문학 비평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해석하기 -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1919)은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독일 ‘성장소설'이다. 독일은 소위 교양 ‘성장소설’의 측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86)를 필두로 계속 하나의 장르로서 지속적인 맥을 잇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이해할 때는 1차 세계대전(1914~1918), 전통적 가치의 와해, '대중'의 출현이라는 3가지 시대적 배경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1)
당시 여러 작가는 전쟁(1차 세계대전)에 찬성하는 글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헤세는 당시 여러 작가와는 달리 일관성 있게 전쟁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헤세는 일관성 있게 당시 전쟁에, "쇼비니즘과 야만"에 대항해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평화와 반전을 위한 연대를 호소하며 많은 정치적 글들을 발표하였다. 에셀보른-크룸비겔에 의하면 헤세는 그런데도 '적극적인 반전주의자들'에 속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정치적 활동을 하려 하지 않았으며 어떤 정치적인 그룹에도 속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전통적 가치가 와해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헤르만 브로흐’는 소설 『몽유병자들』(1932)에서 기독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가치의 통일성이 와해한 20세기 초 유럽인들을 가리켜 "길을 잃은 종족(ein verlorenes Geschlecht)"이라고 칭한다. 소설 데미안에서 헤세가 형상화하는 당대의 사람들 역시 브로흐의 길을 잃고 헤매는 '몽유병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시대는 '대중'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오르테가이 가세트’는 그가 출간한 『대중의 반역』(1930)에서 당대 유럽에서 출현한 '대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중'이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에 대해 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과 동일시하면서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모두를 의미한다. 이는 헤세가 소설에서 그려내는 20세기 초 유럽인들과 일치한다.2)
소설의 내러티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1919)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순수하던 시절에는 빛과 어둠, 낮과 밤, 선과 악으로 세계를 구분한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어둠으로 대변되는 크로머의 계략에 의해 선의 세계에서 악의 세계로 점점 빠지게 되며 고통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전학생 데미안이다.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정반대의 선과 악의 개념에 대한 해석을 마주하게 된다. 또 데미안은 악의 세계에 종속되어 있던 싱클레어를 구해주는 조력자로서 등장한다.
이후, 싱클레어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견진 성사 시기에 데미안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선의 세계도 악의 세계도 아닌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점점 크게 느끼게 된다. 싱클레어는 고등학교 에 진학하며 사상과 신체의 독립을 하게 되며 데미안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싱클레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질 나쁜 무리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지만, 어느 날 자신이 베아트리제라고 이름 붙인 여성을 발견하고 그녀를 이상(理想)으로 삼아 자신만의 능동적인 밝은 세계를 건설한다. 이 과정에서 싱클레어가 그린 자신의 이상(理想)에서 데미안의 초상이 나오자,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그에게 미친 긍정적 영향을 깨닫고, 이에 대한 그리움과 추상적 이상향을 담아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새는 알을 뚫고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알을 뚫고 나온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는 싱클레어의 편지에 대한 데미안의 답장이다. 이를 읽고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피스토리우스라는 음악가를 만나 아브락사스의 의미를 배우게 되는데, 아브락사스는 신이며 동시에 악인 존재로 모든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피스토리우스와의 공부의 과정에서 진정한 삶이란 자기 자신의 운명이자 자아를 찾고 그것을 철저한 고독 속에서 견뎌내는 것이라는 것, 즉 자아로의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을 진학하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싱클레어는 자신의 꿈에 아브락사스로 나타났던 여인을 목격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가 데미안의 어머니임을 알게 되고 내면만의 사랑으로 남겨둔다. 대학 인근에 거주하던 데미안 가족과 싱클레어는 친근해지고, 데미안과의 내면적인 대화를 통해 성장을 이룬다. 싱클레어는 대화를 통해 개인의 실존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내면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유럽의 국면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공동체에 참가하게 된다. 싱클레어는 여기서 새로운 유럽 사회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싱클레어를 둘러싼 환경이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싱클레어는 전쟁을 통해 자아는 내면의 집중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운명의 과제를 통해 사력을 다해 세계로 통하는 껍질을 깨어나와, 세계를 재창조하여 자아를 찾아야 함을 깨닫고 결국 그 또한 데미안과 같은 모습이 되며 난해한 결말에 도달한다.
소설 초반부에서 해석되는 배경과 목적
소설 1장에서 서술되는 '밤과 낮'으로 비유되는 두 세계 중 '밝은 낮의 세계'는 헤세에 의하면 전형적인 시민계급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기독교와 이성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다. 그러나 크로머에 의한 타락의 에피소드가 가리키듯이, 이 밝은 세계는 분명 이들의 무지를 즉 한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주인공이 체험하는 무지와 맹목, 무기력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와 이성을 근간으로 하는 전통적인 세계의 균열과 와해를, 즉 유럽 시민사회 전체를 지탱 하는 가치체계의 붕괴를 가리킨다. 유년의 붕괴는 단순히 주인공의 성숙을 가리키고 있지만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유럽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평균적인 시민들, 길 잃은 자들의 삶이다.
이러한 ‘길 잃음’에 대해 헤세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간, 새로운 유럽인에 관한 비전을 제공한다. 데미안이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분리된, 이 공식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총체적 세계”를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며, 기존의 예배와 함께 ‘악마예배’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신의 존재 부정이 아니라 유럽의 기독교에 의해 왜곡된 신의 문제다.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라는 신에게로 날아가는 새의 이야기를 메시지로 받은 것은, 주인공의 성장에 대한 은유이다. 이는 개인의 총체적 자아의 실현 과정에 대한 은유로 기능한다.3)
소설에서 1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주제화되는 문제
소설의 7장과 8장에서 주제화되는 전쟁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얼핏 보면 저널리즘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호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소설에서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소설을 집필하고 원고를 넘기는 1917년경에 전쟁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입장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치더라도, 그의 소설 속 전쟁에 대한 입장은 충분한 고민거리이다. 소설은 일차적으로 보편적인 인간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 발견을 주제화하려고 하나, 소설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유럽인 즉 당시 세계시민의 자기 발견이며 그것을 찾는 배타적 과정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간 도시에서 산책하다가 우연히 데미안과 재회하게 되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 장면에는 데미안의 지인인 일본인이 하나 등장하는데, 이 일본인의 등장과 퇴장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은 소설의 진행상 주인공이 ‘떼 인간’들로 전락한 그 도시 대학생들에 대해 하는 비판 바로 뒤에 위치하며, 데미안과 일본인 사이의 대화 주제 역시 개인들의 집단화 현상에 대한 비판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당대 유럽 젊은이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해 데미안은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는데, 그는 일본인의 비판을 유럽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데미안은 이후 이 일본인으로부터의 ‘작은 굴욕’을 갚기 위해 일본인과 ‘권투 시합'을 하게 되며, 화자는 소설의 마지막 장 시작과 함께 일본인은 완패한 후 떠났다고 쓰고 있다. 일본인이 등장하는 후반부는 ‘길 잃은 자들’ 중 대중 속으로 도피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세계’를 찾고 있는 ’매우 상이한 부류의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데미안에게는 가치 혹은 이념의 진공상태와 다름없는 유럽의 위기 상황에서 유럽의 ‘바깥 세계’를 대안으로 받아들이려는 자들이다. 일본인은 이 유럽 이외의 외부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한 것이다.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담론은 깨어난 자들, ‘우리들’은 국가나 민족을 초월한 개인성을 완전히 실현한 보편적인 인간이자 대중들과 구분되는 이들만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 특별한 정체성이 소설에서 지속해서 서술되는 카인의 후예로서 정체성이다.4)
책이 쓰인 배경과 목적
이 소설은 적어도 작가의 집필 의도와 관련해서는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양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 데미안은 사회정치적인 영역과 개인의 영역을 명확하게 분리하고, 개인의 삶과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목을 이끄는 것은 이 성장담의 마지막 두 장에서 전쟁 즉 1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주제화되는 문제다. 헤세는 당시 여러 작가와 달리 일관성이 있게 전쟁(제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으나, 소설 데미안의 인물들은 전쟁에 열광하지는 않더라도 전쟁을 운명적인 것으로, 필연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소설의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전쟁에 대한 입장과 담론은 소설의 성격을 ‘한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 발견’에서 서구 유럽 사회의 진단과 비판을 근간으로 새롭게 탄생해야 할 유럽과 유럽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소설 『데미안』은 의미를 잃은 유럽 사회에게, 세계대전이라는 위기 앞에 놓인 유럽 사회에게, 헤르만 헤세가 당대 유럽 사회에게 제시하는 ‘소설’로 작성된 설득문이다.
1) “한-독 성장소설 비교연구”<기초학문자료센터>, <https://www.krm.or.kr>(16:00, PM).
2) 홍길표, 「헤르만 헤세의 ‘정치적 소설’ 데미안」, 『헤세연구 제42집』, 5~21, 2019, pp.6-11.
3) 홍길표, 「헤르만 헤세의 ‘정치적 소설’ 데미안」, 『헤세연구 제42집』, 5~21, 2019, pp.11-15.
4) 홍길표, 「헤르만 헤세의 ‘정치적 소설’ 데미안」, 『헤세연구 제42집』, 5~21, 2019, pp.15-18.
5) 헤르만 헤세, 『데미안』, 코너스톤 출판, 이미영 옮김, 김선형 해설, 2020, ISBN 979-11-87011-55-2 0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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