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의 역사를 통시하고 느낀점

 현대 한국의 역사를 통시하고 느낀점


전한 시대 기록을 보면 부여족은 스스로를 도망쳐온 망인이라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부여의 짧은 이름은 예족이다.

또 기록에 따르면, 예족의 수도는 한반도 동부 해안가

고구려와 옥저또한 언어가 통하던 예족의 일종이다.

사로국의 건국 당시 옥저 사신이 사로에 방문한 기록

사로국 시대 예왕지인을 북명사람이 전달했다는 기록

백제의 건국은 고구려의 유민이라는 기록.


그럼 부여인이 북방기마민족? 선사시대에 반도 남부에서 동부해안을 통해 올라온 이후, 역사시대에 남서로 이동한 민족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국경이 접해있지 않음에도 서로 연락이 통했던 기록이나, 고구려가 신라를 멸망 가능했음에도 하지않았던 기록. 

애초에 모두가 같은 계열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왕족들만이 알고있던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는 형제 국가임에도 복수심에 서로를 파괴하고, 

신라는 스스로가 중화의 후예라고 세뇌하며 동족 배신 이후 통일. 

결국, 그 끝은 중국화와 신라의 멸망.


중국이 200~300년 마다 멸망과 건국을 반복하는 싸이클이라면, 중국화 이전의 한반도는 그렇지 않았다. 대체로 700~9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이민족과 전쟁에서 언제나 패배했지만, 최종 승자는 언제나 중국이었다. 정정당당한 승부에서는 패배했지만, 권모술수와 프로파간다를 통한 공격에 능하다. 마찬가지로 중국화한 고려는 고대시대의 전쟁능력을 잃고, 중국식의 왕조교체형 역사로 변형된다.

다른 이민족들은 중국화 이후, 중국의 일부가 되지만, 반도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내륙과 반도의 지정학적 차이에서 발생한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현대한국은 아직까지도 프로파간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는 21세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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