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정당화 가능성

 자살의 정당화 가능성


자살-인간은 왜 자살하는가?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인간이 스스로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끊는 행위 즉, ‘자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본성적으로 생명의 자기보존욕구를 무시하면서까지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이유는 개인의 존재를 거대한 사회의 힘이 짓누르고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먼저 자살이라는 행위, 또는 추동推動의 이유와 목적을 정의해 보자. 필자는 자살의 원인과 그 근원적인 이유는 결국 사회에서 출발된다고 본다. 이 한 문장을 읽어보면, 필자의 사상은 뒤르켐이 자살론에서 말한 “자살은 엄연히 사회적인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다”라는 문구와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론의 사고와 필자의 사고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자살론은 자살의 유형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하는데, 개인이 사회에 매우 많이 통합되어 있었거나 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분류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자살의 원인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회와 개인은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향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때 어느 한쪽의 힘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강해지거나 약해진다면, 이 힘의 투사는 반대측을 압도하게 된다. 사회가 개인의 힘에 압도당한다면 사회는 개인의 이상에 따라 변모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개인이 사회의 힘에 압도당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이때 발생하는 사건/행위가 ‘자살’이다. 다만, 오해는 금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힘은 음(-)의 방향으로 투사되지 않는다. 결국 자살은 개인이 최후의 수단으로 택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 힘의 투사이다. 그럼 결국에 자살 행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자기자신의 최후의 발현인 것이다. 

필자는 자살이 정당화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해겔은『법철학』에서 자살을 권리(법)의 문제로 보고, 소유의 마지막 부분인 ‘인격’을 양도될 수 없는 기본권으로 주장하면서, ‘외면적인 활동의 포괄적 총체’인 ‘생명’또한 기본권으로서 삶을 포기할 권리는 존재치 않는다고 본다. 이는 마땅히 도의적으로 옳다. 다만, 필자는 중요한 사실을 한가지 언급하고 싶다. 자살로 죽은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즉, 이미 자살을 행行했다. 그들의 행동은 당연히 정당화되지도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불귀의 객이 되었고, 그들을 향해 너희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고 주장해도 무슨 소용인가? 필자는 자살의 부정당(不正當)함을 부정(不定)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실리적으로 이미 죽은 자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앞으로 죽음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자들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시키고자 함이다. 자살은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다. 그러나 자살은 정당성을 갖추고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해진다. 이는 정당함의 부정성이 자살을 예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의 관점에 따르면, 결국 자살은 개인의 힘과 사회의 힘 사이의 균형이 파괴되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개인이 사회에 저항할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실질적인 자살 원인의 사라짐은 미래에 자살을 행할지도 모르는 이들의 자살 행동 동기를 없앨 것이고, 이는 자살의 정당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앞의 문단에서는 ‘자살의 실제적인 지표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작업은 자살의 부정당성을 알리는 것이 아닌, 자살의 추동 원인을 제거하는 것’임을 드러냈다. 이제 왜 자살은 정당화가 불가능한지에 대한 논거들을 드러내겠다. 우선, 윗 문단에서 작성(헤겔의 법철학 내용)했듯 권리의 측면에서 자살은 정당화 불가능하다. ‘인격’을 기본권으로 인정함은 ‘생명’을 기본권으로 인정함이며, 이러한 기본권을 멋대로 포기할 또다른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는 권리의 측면과 비슷한데, 자살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적인 자기애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생명의 지속을 만드는 감각을 수단으로 하여 본인의 생명이 스스로의 생명을 파괴함은 자기모순적이고 본성적으로 존립할 수 없으며, 나의 인격 안에서 인간을 처분하고자 함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처우하는 것”으로 인식하므로 자살을 정당치 못하다고 본다. 세번째, 자살은 그 개인이 구성원 인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위반이기 때문이다. 일신의 편안함을 위해 선택한 자살은 비겁한 자살(cowardly suicide)로서 이후에 남겨질 가족들과 친구들의 심리적인 충격을 배려하지 않았으며, 그의 자살이 유발할 사회적인 비용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살은 그 행위가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면, 제한적으로 합리화 가능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저번 발표시간에 필자의 조는 자살이 제한적으로 정당화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 주장은 치명적인 맹점이 존재한다. 브란트(R. Brandt)가 주장한 가치와 반가치를 비교형량하는 이른바 대차대조표식의 자살(balance sheet suicide)이라는 관념은 자살을 통한 이익 즉, 죽음이 명백한 혜택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하지만, 죽음을 ‘마지막 여행’, ‘영원한 잠’, ‘영원한 휴식’, ‘영원한 평화’, ‘삶의 부재’로 묘사되는 것은 순진하고 진부한 낭만주의 성향에 불과하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은 것이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합리적으로 선택될 수는 없으며, 그렇기에 죽음의 불투명성을 고려할 때 자살하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자살의 택하는 이들에 대해서 도의적인 비난을 하고 싶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의 최후의 표현에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 되지 않지만, 이를 무시하고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평균 36명(《World Health Organisation suicide prevention》. 2008.)이 지금도 자살을 행하고 있다. 이제 이 정당화가 결코 불가능함을 증명했으니, 자살 행위들을 실질적으로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을 압박하는 사회를 유연하게 만들고, 사회를 변화 시킬 정도의 강력한 시민들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


참고문헌:
서정혁. (2007). 헤겔의 『법철학』에서 ‘자살’의 문제. 철학, 92, 131-159.
오세혁. (2010). 자살의 정당화 가능성. 중앙법학, 12(4), 351-386.
유호종. (2009). 자살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철학과 현실, , 42-53.


(*PPT 자료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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