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박소희, 우리가 몰랐던 재일한국인 배우

‘파친코’의 박소희, 우리가 몰랐던 재일한국인 배우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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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재일한국인(자이니치)의 일터였던 '파친코'. 파친코는 일본에서 국민 오락이면서도 도박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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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자이니치 3세 배우 소지 아라이 '박소희가 내 진짜 이름'

  • 구유나
  • BBC 코리아

2017년 출간된 재일한국인(자이니치)의 삶과 애환을 담은 소설 '파친코'(Pachinko). 이 작품이 드라마화 되면서 국내외 여러 배우들이 출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파친코는 재일한국인과 관련이 깊다.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은 공공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취업할 수 없었고, 생계 유지를 위해 파친코 기계 제조 하청업체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파친코 산업에 발을 들였다. 한때 산업의 70%를 재일한국인이 점유했을 정도다.

극 중에서 주인공 선자(윤여정)의 둘째 아들인 모자수도 파친코를 운영한다. 모자수를 연기한 배우는 '소지 아라이.' 하지만 사실은 본명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박소희', 파친코 속 가족과 같은, 재일한국인 3세다. 

배우 박소희
사진 설명, 

'파친코' 출연 배우 박소희가 BBC코리아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온 가족

박씨의 조부모님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재일한국인처럼, 할아버지는 공사판에서 일을 했고 할머니는 쇠붙이를 모아다가 팔았다. 

아버지는 기자이자 사회활동가였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활동가로서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부모님은 대학 시절 어렸을 때부터 써온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 이름을 택했다. 아들이 태어나자 '박소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배우 박소희

사진 출처, SOHE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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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는 1975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박소희'로 산다는 것 

박씨는 한국 이름을 갖고 조선 학교가 아닌 일반 일본 학교를 다녔다. 어린 그가 학교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컸다. 

"자이니치, 그것도 3세가 한국 이름만 사용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어릴 때는 제 이름이 싫었어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이름이 이상하다며 많이 놀렸죠. 하지만 누가 제 이름을 비웃을 때마다 저는 맞서 싸웠어요."

그는 다행히 일본에서 심한 차별을 경험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린시절 집 대문 밑에 끼워져 있던 쪽지를 기억했다.

"삐뚤빼뚤한 일본어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적혀있었어요. 어머니는 이런 거 읽을 필요도 없다면서 바로 버리셨죠."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한국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께 감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주변을 보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숨기고 살 때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어요. 정체성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공개됐을 때의 두려움이 크다고나 할까요. 저는 오히려 제게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한국에 대해 묻는 일본인을 많이 만났어요. 부모님이 제가 삶을 좀 더 심플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셈이죠."

브리타니 머피와 박소희

사진 출처, SOHE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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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멘 걸' 출연 당시 배우 브리타니 머피(왼)와 박소희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기까지

박씨가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품은 건 아니었다. 그는 와세다 대학교에서 무역을 전공했다. 졸업 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저도 어릴 때부터 매달 영화 잡지를 모으고 영화를 보러 다녔어요. 게리 쿠퍼, 케리 그랜트,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배우들이 저의 우상이었죠. 그래도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대학에서 공부는 안 하고 영화 보면서 놀러만 다녀서일까요, 졸업할 때쯤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도쿄에서 '벤트' 등의 연극에 참여하면서 연기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연기 활동을 하면서도 가명을 만들지 않았던 그가 왜 다시 '소지 아라이'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그는 "일종의 예명"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우스운 일이죠. 일본 연예계에서도 10년 넘게 '박소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거든요.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가 배우 활동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이 이름으로는 일본인 배역 오디션을 볼 수 없었거든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자이니치를 이해해주는 곳이 많지 않았죠."

결국 그는 미국에서 배우 일을 하면서 예명을 쓰기로 했다. '아라이'는 친가에서 쓰던 일본 성씨다. 

그는 2008년 영화 '라멘 걸' 출연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미국에 오고 싶었어요. 자이니치로서 제가 늘 이방인이라고 느꼈거든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미국은 이방인이 모인 국가잖아요. 원주민을 제외하면요. 미국이라면 제가 구성원 중 한 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박소희 배우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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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을 상징하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배지를 착용하고 파친코 LA 프리미어에 참석했다

'파친코'와의 운명같은 만남

박씨는 자신이 "파친코의 1호 팬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17년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는 2007년부터 4년 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파친코'를 집필하기 위해 자이니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박씨는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알고 지내던 잡지 편집장이 작가님을 소개해줬어요. 자이니치에 대한 책을 쓸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비롯해서 제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의 친구들이 살아온 얘기를 전해드렸어요."

박씨는 이후 '파친코'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소속사에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재일한국인 3세인 박씨는 '파친코' 속 어떤 캐릭터에 가장 공감했을까. 그는 선자보다는 이후 세대인 노아나 모자수, 솔로몬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저는 선자 같은 1세대는 완전 한국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왔고,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주변에는 한국인 지인들이 많죠. 반면 2세대인 노아와 모자수는 언어와 문화, 정체성 위기를 겪는 첫 세대예요. 3세인 솔로몬도 같은 위기를 겪긴 하지만, 일본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는 등 무척 부유하게 자랐다는 점에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이긴 하죠."

윤여정과 박소희가 출연한 파친코의 한 장면

사진 출처, APPL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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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극 중 선자(윤여정)와 모자수(박소희)

"윤여정 연기 보면 할머니 생각에 눈물 흘려"

박씨는 '파친코'에서 함께 연기한 윤여정 배우를 YJ라고 부른다며 그가 촬영 내내 재일한국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윤씨가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재일한국인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을 물어봤다고 했다. 

그는 윤씨가 "'자이니치'라고 부르는 것이 무례가 아닌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YJ, 자이니치라고 부르셔도 돼요. 저희는 자이니치인 게 자랑스러우니까요."

또 그는 윤씨의 '언어 교환' 요청을 거절했다며 웃었다. 윤씨가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대신 일본어를 가르쳐달라는 얘기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YJ가 극중에서 일본어를 하는 장면을 보면 우리 할머니가 떠올라요. 아마 자이니치라면 그 모습을 보고 눈물 흘릴 거예요. 정말 아름답고 감정을 자극하는 모습이죠. 자이니치에게 할머니는 특별한 존재예요. 자이니치에는 '모국'이 없고, 그 역할을 할머니가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YJ의 연기는 1세대 자이니치 할머니 그 자체예요."

일본 내 비난에 대해

박씨는 '파친코' 개봉 후 재일한국인 지인으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자이니치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파친코'가 '역사를 왜곡'하거나 '반일 작품'이라는 일본 내 일부 비난 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먼저, 저는 사람들이 얼굴과 이름을 숨긴 채 하는 말은 믿지 않아요. (비난성 발언을 하는) 상당수는 작품을 읽거나 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일본 시청자들이 '파친코'에 대해 좋은 평을 남겨주고 있어요. 일본이든 한국이든 혐오성 발언은 두드러져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파친코' 시즌2, 3도 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앞으로 더 많은 재일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영어사전에서 '자이니치'를 검색하는 것"이 꿈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자이니치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제가 더 열심히, 더 잘 연기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이니치'를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언젠간, 사전에도 올라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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