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해서 (어릴적부터 느낀 그 이상함)

 분노에 대해서 


이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이상함과 기괴함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태어난 후에 경험으로서 얻었다는 감각에 대한 생각이 아니다.

단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제인지 모를 시절부터 이상함에 대한 감각을 느겼고, 이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어쩌면 역사를 학교에서 처음 들었거나 그 이전에 주변 사람에게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역사 지식에서 난 이상함을 느낀 것이 아닐까?

어렸을 적 느낀 이상함은 화와 짜증을 변했다. 이 화와 짜증은 분노로 표현되었고, 이 어렸을 적의 미숙한 분노는 조절도 없고, 절제도 없이 그저 주변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표현되었다.

내 어린 시절은 나의 까닭모를 분노와 이에 따른 모든 망침의 과정이었다. 설령 나이를 먹고 분노를 숨기더라도 사람을 대상으로한 내 깊숙한 혐오를 타인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는 다른 망침의 과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분노에 따른 결과라고 하기에는 묘하다. 왜냐하면, 그 분노는 지금와서 보면 결국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느낀 의문은 곧 공포로 변했다. 이 공포는 내가 태어나 속한 세상, (물론 세상 전체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그저 세상 전체인) 그 자체에 대한 공포였다. 어린 나에게 무슨 방도가 있었을까? 단지 미숙하고 어리석기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조차 알수없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두려움에게 나는 나를 과장하고 위협했을 뿐이다. 어린 나의 위협은 거대한 그것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대항으로 기능하기 위해 최대한 내가 이해하는 최대의 악의를 표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예행연습으로 악의를 이해했고, 분노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으로서 절제를 이해했고 조절을 이해했습니다. 이제 내 분노는 조절을 통해 좀 더 날카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절제를 통해 오직 적대 대상에게만 표현됩니다.

이 책을 접하는 이들은 이글에서 분노가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맞습니다. 난 분노를 담아서 글을 쓰고 있고, 이는 글속의 분노입니다. 그리고 내 분노의 원인을 난 내 경험과 선현의 경험을 통해 이해했고, 이를 해결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글에 분노를 담아서 목적성을 담아서 쓰면 안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노는 내 원동력이며 지성의 원동력입니다. 지성의 시작은 공격성이며, 이 공격성은 나에게 있어서는 곧 분노입니다. 분노가 목적이 아닙니다. 난 이제 절제를 통해 목적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심은 원동력이며 대의는 목적입니다. 이는 명백히 다르며 분명히 구분될 것입니다. 난 대의를 향하고 사심을 끝낼 것입니다.

'역사학의 사실'이라는 대의를 그리고 '인류에게 적대되는 왜곡되는 역사기록'이 옳지 못한 일이라는 대의를 난 알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그 어떠한 비하도 비난도 내게 기능하지 않습니다. 난 이것이 옳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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