淵씨 또는 泉씨에 대한 짧은 분석

 

연씨(淵) 또는 천씨()에 대한 짧은 분석


당나라 시대 사서들은 자기들 황제 이연의 이름 자를 피휘하다보니 연개소문(淵蓋蘇文)과 그의 아들들의 이름의 淵자를 泉자로 바꿨는데 당나라도 멸망하고 이 피휘를 지킬 필요가 없어진 고려시대의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옛날 당나라 사서를 참고하다가 이게 피휘로 바꿔적은것인 줄 모르고 삼국사기에도 그냥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고 쓴 것처럼 연남산(男産)도 천남산(泉男産)으로 그대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蓋蘇文 (或云蓋金), 姓泉氏, 自云生氷, 以惑衆. (Translation: 개소문(蓋蘇文) 혹은 개금(蓋金)의 성(姓)은 천씨(泉氏)이다. 스스로 ‘물에서 태어났다.’라고 하여, 사람들을 현혹하였다.)라고 한다. . 

「천남생 묘지명(泉男生 墓誌銘)」(679)에는 개금(蓋金)으로 나온다. 『삼국유사』 권제3 흥법(興法)제3 보장봉로보덕이암(寶藏奉老普德移庵)조에는 『당서(唐書)』와 『고려고기(高麗古記)』를 인용하여 성이 개(盖)이며 이름이 금(金)이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역사왜곡이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당서(唐書)≫는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요동(遼東)을 정벌할 때 양명(羊皿)이라는 비장(裨將)이 있었다. 전세가 불리하여 죽게 되자 그는 맹세하기를 “반드시 총신(寵臣)이 되어서 저 나라(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다”고 하였다고 기록한다.

『삼국유사』 권제3 흥법(興法)제3 보장봉로보덕이암(寶藏奉老普德移庵)조는 及蓋氏擅朝以盖爲氏, 乃以羊皿是之應也. (Translation: 개(盖)씨가 조정을 전횡하게 되자 개(盖)를 성으로 하였으니, 곧 양명(羊皿)이 이에 부합된다. )라고 하였다. (Cause, 羊 + 皿 = 盖)

삼국유사에 따르면, ≪당서≫에는 “개소문이 스스로 막리지(莫離支)라고 했으니, 중서령(中書令)과 같다”고 하였다. 또 ≪신지비사(神誌秘詞)≫의 서문에는 “蘇文大英弘序并注”(Translation: “소문(蘇文) 대영홍(大英弘)이 서문과 아울러 주석하다”) 고 했으니, 

則蘇文乃職名有文證, 而傳云 “文人蘇英弘序”, 未詳孰是.

(Translation: 즉, 蘇文이 곧 職名인 것은 문헌으로 증명되지만(?), 에 이르기는 “문인(文人) 소영홍(蘇英弘)의 서문”이라고 하였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라고 언급한다.

‘물속에서 태어났다’: 본 기록은 『신당서』 권 제200 열전 제145 동이 고려조에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천남생 묘지명(泉男生 墓誌銘)」(679) 에서 “遠系出於泉 旣托神以隤祉 遂因生以命族”이라고 한 것도 참고된다. 여기에 따르면 그의 가문은 물 [泉 또는 水] 에서 기원하였고, 이에 천(泉)을 성 또는 씨로 삼았다고 한다. 

연개소문의 성을 천씨(泉氏)로 이름을 개소문(蓋蘇文)으로 파악하였다. 중국측 기록인『신당서』·『자치통감(資治通鑑)』과 「천남생 묘지명(泉男生 墓誌銘)」(679) 및 「천헌성 묘지명(泉獻誠 墓誌銘)」(701) 등 금석문에도 천씨로 나온다. 『구당서』 권제199상 열전제149상 동이 고려(高麗)조에는 ‘전(錢)’씨로도 나온다. 

천과 전이 동일한 음가로 통용되었다는 점에서 천이 옳다는 주장(박승범, 52~53쪽, 李成市, 118~119쪽)과, 천은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휘를 피휘(避諱)한 것으로 본래 연(淵)이었다고 이해하는 주장(安鼎福,「泉蓋蘇文; 韓鎭書,「蓋蘇文; 李弘稙, 288쪽; 이병도, 1996, 468쪽)이 있다.


Reference:

「천남생 묘지명(泉男生 墓誌銘)」(679)
「천헌성 묘지명(泉獻誠 墓誌銘)」(701)
천남산 묘지(泉男産 墓誌)
 『구당서』 권제199상 열전제149상 동이 고려(高麗)조
『삼국유사』 권제3 흥법(興法)제3 보장봉로보덕이암(寶藏奉老普德移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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