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영지주의와 헤르메스주의 / [#서양사] 신비주의학의 역사적 실재로서 영향

 [#서양사] 영지주의와 헤르메스주의 / [#서양사] 신비주의학의 역사적 실재로서 영향


[#서양사] 영지주의와 헤르메스주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헤르메스와 이집트 신화의 토트가 섞인 신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연금술사의 창시자로 불리는 존재의 이름입니다.

헤르메스주의 문헌에서는 작성자가 스스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거나 위대한 스승, 훌륭한 연금술사를 죄다 이렇게 부르는데, 이것은 특정인물이 아닌 뛰어난 연금술사에 대한 존칭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중세시대에는 점성술이나 연금술 같은 신비학이 다른 학문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의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됩니다.

현대 세계보건기구(WHO)의 상징인 지팡이와 휘감겨 있는 2마리의 뱀은 '헤르메스의 지팡이'라고 부르며, 의학의 상징입니다.

영지주의와 헤르메스주의는 상당한 연관이 있고, 마법(Magic)이라는 표현의 기원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몬 마구스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사마리아에서 사람을 현혹하다가 사도 베드로와 만나서 마법 대결을 합니다. 비행 마법을 겨루다가 베드로에게 당해 땅에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지주의에서는 시몬 마구스를 최초의 마법사로 간주합니다.

영지주의 학자인 사무엘 하틀립(Saruel Fartib, 1600-1662)은 영국 왕립학회의 초창기 멤버이자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와 정기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편지를 주고받은 지식인을 묶어서 하틀립 서클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후에 영국왕립학회의 바탕이 됩니다.


[#서양사] 신비주의학의 역사적 실재로서 영향

유대인은 잉글랜드에서 1290년에 추방되고, 1656년에 다시 정착했습니다. 므나쎄 벤 이스라엘(Me nasseh ben Israel, 1604-1657)이라는 랍비가 1655년에 잉글랜드에 와서 요청을 합니다. 당시 그는 전 세계 유대인을 모아 한곳에 정착하면 메시아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창세 후 1656년이 지나 대홍수가 있었기에, 1656년은 종 교적으로 중요한 해였습니다. 비록 서력이 실제 예수의 생년과는 다르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존 에블린(John Evelyn, 1620-1706)의 편지에 따르면, 1656년에는 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기적을 눈으로 볼 수 있기에 유대인을 개종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10지파'는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12지파가 떠돌던 중 10지파가 어딘가에 정착해 다른 민족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영국, 북유럽, 프랑스, 등 온갖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랍비 므나쎄 벤 이스라엘이 유대인을 모으기로 결심한 것은 당시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10지파'의 후손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유전자 분석으로 드러난 바, 마론파 크리스천의 주장은 어쩌면 부분적으로 옳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국가도 없는 민족의 랍비 한명이 역사를 뒤바꾸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양인들은 흔히 이것을 '역사에서 행동하시는 신'이라는 표현으로 애매모호하게 표현합니다. 제 이해에서 상세히 표현하자면, 유대인이라는 집단은 하나하나의 개인들이 진정으로 유대인이라는 집단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독일의 임무형지휘체계처럼 유대 사회는 공통된 이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각 개인이 유기적으로 목표를 위해 진심으로 행동하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동양사에서는 전혀 닮은 구조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해하기 힘들지만, 서양에서는 그것이 가능했고 그렇기에 저력을 가졌습니다. 현대적 민족 개념은 이런 배경을 가진 서양 사회에서 최초로 탄생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년 4월 25일 ~ 1658년 9월 3일)은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주장이 발생한 원인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유대인들을 영국에 다시 수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크롬웰이 죽자마자 그가 언제 악마와 계약을 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쓴 책이 출판되기도 합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악마를 만난 것은 우스터 전투(1651)라고 합니다. 의회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분쇄한 잉글랜드 내전 최후의 전투입니다. 책에선 악마와 올리버 크롬웰이 우스터 전투의 완벽한 승리를 대가로 7년 후 목숨을 거두기로 했다고 주장합니다. 올리버 크롬웰은 아일랜드의 반잉글랜드 가톨릭 세력을 명목으로 아일랜드인의 30만명 즉, 1/4를 죽였고, 지금도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올리버 크롬웰을 싫어합니다.

이상을 통해, 영국에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이 발발한 더 깊은 시대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합니다.


: 위 내용은 제가 작성한 제 스레드(Thread) 게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 조항을 철저히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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