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史] 원효의 화쟁 사상 및 불교대중화 -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
원효의 화쟁 사상 및 불교대중화
- 원효의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
I. 원효 시대 한국불교의 역사적 맥락
II. 불교철학에서 원효의 의미
III. 원효의 삶
IV. 원효의 주요 저서 및 사상
V. 원효 사상을 통한 불교대중화
VI. 원효의 영향과 유산
I. 원효 시대 한국불교의 역사적 맥락
우선 이 시대 중국불교의 상황 :
역경 삼장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일군의 중국불교가들에 의해 사상의 전승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인도불교사상에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천착하는 단계. 이 단계에서는 새롭게 전해 진 사유체계에 대한 중국적 해석보다는 인도적 맥락의 해석에 대한 천착이 중심이 된다. 이 두 번째 단계는 흔히 학파불교(學派佛敎)의 단계로 지칭되고, 번역을 둘러싼 이해(理解)와 착종(錯綜)이 발생한다. 주된 목표가 되는 것은 인도불전의 진의에 대한 파악이며, 이를 위한 해석학적 작업이 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해석학적 작업의 진행 과정에서 전역된 불교사상 간의 이해와 착종, 그리고 인도불교사상과 중국사상 간의 이해와 착종이 발생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은, 이미 한역된 불전에 대하여 한문의 맥락에서 중국적 사유에 의해 주석하거나 해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인도불전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추궁하는 것으로서의 해석학적 연구는 약화되고, 한문불전을 토대로 중국적 사유에 의해 해석하고 재구성한 사유체계를 형성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사유체계는 특정 사원 혹은 특정한 인적 계보를 중심으로 계승되면서 체계화 과정을 가속한다. 흔히 종취(宗趣)라고 하는 내적 체계와 교판(敎判)이라고 하는 외적 체계가 어우러져 하나의 사상체계를 일정 범주 안에서 고착화하게 된다. 보통은 종파불교(宗派佛敎)라고 부르는 단계이며, 종취와 교판 등의 체계에 의해서 앞선 학파불교 시대의 사상들을 자신의 사상 체계 안에 포섭하여 재조직하는 경향을 보인다. 1)
이런 맥락에서 한국불교의 상황 :
원효 시대의 한반도에는 다양한 불교이론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현장(玄奘 602-664)의 역경(譯經)에 의해 막을 연 신역불교(新譯佛敎) 및 법상(法相)의 신유식(新唯識)이 촉발시킨 중국 사상계의 쟁론들은, 중국과 보조를 맞추며 발전하고 있던 한반도의 사상계에도 곧바로 이식되었다. 현장의 신역불교가 점화시킨 중국 사상계의 쟁론은 곧장 한반도 사상계에도 이전되어, 같은 불교 이론을 놓고 저마다 자기 이해가 옳다며 다투는 사람들, 자기가 선호하는 불교 이론이 최고라며 쟁론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라 사상계는 배타적 분열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원효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러한 정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말 그대로 취한다면 두 주장은 모두 옳지 못하다.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워 다투면서 부처의 뜻을 잃는다. 그러나 만일 결정적인 고집이 아니라면 두 주장이 모두 옳다. 법문(法門)은 걸림이 없어서 서로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효, 「涅槃宗要」, 한국불교전서1-529상.)
"깨달음의 길(佛道)은 넓고 확 트여 걸림이 없고 범주가 없다. 무엇에 기대는 것이 아주 없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음이 없다. 이 때문에 일체의 다른 가르침이 모두 깨달음의 가르침(佛敎)이요, 온갖 학파들의 주장이 옳지 않음이 없으며, 불교의 모든 가르침으로 다 진리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조금 들은 바 좁은 견해만을 내세워, 그 견해에 동조하면 옳다고 하고 그 견해에 반대하면 모두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사람이,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두 하늘을 보지 못하는 자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것을 일컬어 '식견이 적은데도 많다고 믿어서 식견이 많은 사람을 도리어 헐뜯는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菩薩戒本持犯要記」, 한국불교전서1-583상.)
또한 이 시대, 아직 신라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중심의 불교로 정착되고 있었으나, 아직 일반대중을 상대로 하는 불교 정착은 미흡했다. 三國遺事 郁面婢念佛西昇에 보면
“景德王때 康州의 남자신도 몇 명들이 뜻을 서방에 두고 州의 경계에 彌陀寺를 세우고 萬一을 기약하여 契를 만들었다. 이때 阿干貴珍의 집에 계집종 하나가 있었는데 이름을 郁面이라 하였다. 그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마당에서 僧을 따라 念佛했다. 주인은 그녀가 직분에 맞지 않는 짓을 한다고 미워했다. (三國遺事 7卷 郁面婢念佛西昇)
귀족들은 서민, 천민의 신분만으로 종교적 편견을 크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공인 초기에는 서민들에까지 불교의 전파는 어려웠을 것이다.
II. 불교철학에서 원효의 의미
한반도의 불교이론은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에 의해 소화되고 전개되었다. 동시대의 중국 대륙에서의 불교이론 수준과 추이에 시차 없이 부응하며 통섭과 화쟁을 개념을 확보한 신라불교는 그 배경에 한반도의 분열의 정신이 있었다.
원효 시대 불교계는 그 철학에서 「中觀論」을 요약한 『十二門論』은 인도의 中觀學派와 중국의 三論宗에서 중시한 논서로서 ‘一切皆空’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가론』과 『섭대승론』 등은 인도의 유가행파와 중국의 유식학에서 중시한 논서로서 萬法唯識을 강조하고 있다. 원효는 이러한 대승불교 양대조류 간의 논쟁을 대립으로 보고 『금강삼매경』과 『대승기신론』을 통하여 회통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원효의 저서를 보면 많은 저서 가운데 금강삼매경소金剛三昧經疎는 大乘起信論疎, 華嚴經疎 등과 더불어 원효삼소元曉三疎라 일컫는다. 이 가운데 大乘起信論疎과 華嚴經疎는 중국 승려들이 해동소라 하며 즐겨 인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불교사의 전개과정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또한 金剛三昧經疎은 3권짜리 略本疎가 중국에 전해져 번역되면서 논으로 격상되어 번역되었다. 원효의 사상을 논함에 있어 일반적으로 그의 사상체계는 大乘起信論에 별기를 주석하면서 이론체계가 완성되고 그리고 금강삼매경의 논을 주석하면서 그의 실천체계 또한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원효는 중국 불교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예로 금강삼매경6)의 연구사를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자. 금강삼매경에 대한 언급은 삼국유사와 송고승전에서 등장한다.
1. 해룡의 유도로 인하여 조서(詔)를 길에서 받고 삼매경소(三昧經䟽)를 지었는데 그때 붓과 벼루를 소의 두뿔 위에 놓았으므로 각승(角乘)이라고하였다.(亦因海龍之誘, 承詔於路上, 撰三昧經䟽, 置筆硯於牛之兩角上, 因謂之角乘, 亦表本始二覺之微旨也, <삼국유사>)
2. 그가 사자에게 이르기를, "너희나라 왕비는 청제의 셋째 딸이다. 우리 궁중에 「금강삼매경」이 있으니, 이각이 원통하고 보살행을 보여준다. 이제 왕비의 병을 증상연으로삼아 이 경전을 부촉하니 너희 나라로 가서 유포하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汝國夫人,是青帝第三女也。我宮中先有金剛三昧經。乃二覺圓通示菩薩行也。今托仗夫人之病為增上緣。欲附此經出彼國流布耳。<송고승전>)
적어도 금강삼매경은 원효와 연관성이 있다.
「금강삼매경」은 한국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경전이다. 찬녕(贊寧, 918-999)의 「宋高僧傳」에 의하면, 이 경전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7세기 중엽 신라 불교의 大安 화상의 편집에 의한 것이었고, 그 최초의 강설자는 역시 대안 화상과 깊은 교분이 있었던 신라불교의 원효(元曉, 617-686)였다. 7세기 중반까지 동북아 불교권에서 거론되던 불교사상의 거의 모든 유형들을 망라하면서 고급 수준의 불교사상을 전개하는 이 「금강삼매경」은 중국 초기선종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달마의 二入四行說과 「금강삼매경」의 二人説의 상관관계를 주목하면서, 초기선종과 「금강삼매경」이 일정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추측되어 왔다.
木村宣彰은 「금강삼매경」 찬술문제를 신라불교 내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하는 동시에, 「금강삼매경」은 攝論宗이나 禪사상 등 당시 중국의 다양한 불교사상을 佛說의 권위 아래 회통시키고자 大安이나 元曉 주변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일 것이라 추정하였다. 金煐泰는 「금강삼매경」의 신라찬술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검토한 끝에 신라 대중불교의 주체였던 大安·惠空·蛇福 등을 그 찬술자로 지목한다. 이어 Robert. E. Buswell은 「금강삼매경」의 찬술자로서 신라의 法朗을 지목하였고, 柳田聖山의 경우은 元曉를 찬술자로 지목한다.
위 연구들을 보면, 대체로 원효 주변의 사람들이 창작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III. 원효의 삶
원효의 생애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는 크게 3가지이다.
「고선사서당화상탑비(高仙寺誓幢和尙塔碑)」는 원효 사후 120년경인 9세기초엽에 건립된 것인데 비석의 깨진 조각일부분만이 현존한다.
『송고승전(宋高僧傳)』은 원효사후 300년경인 10세기후반의 작품이다. 즉 송나라 단공1년(998)에 찬녕(贊寧) 등이 엮은 것이다.
『삼국유사』의 원효전기는, 일연(一然, 1206~1289)이 1281년 완성, 즉 말년에 저술한 것이므로 원효 사후 600년경의 작품이다.
원효[617~686]는 삼국간의 전쟁과 통일이 있었던 격변의 7세기에 살았다. 원효의 속성은 설씨이고, 할아버지는 잉피공(仍皮公), 아버지는 담날(談捺)이라고 한다. 압량군[지금의 경산]의 불등을촌에 살았던 아버지는 17관등 중 11위인 나마(奈麻)였다. 진평왕 39년(617년)에 밤나무 밑에서 태어났는데. 오색구름이 주위를 덮었다고 한다. 담내는 아이의 이름을 서당(誓幢)이라고 지었다. 불등을촌은 원효를 배출한 인연으로 해서, 불지촌(佛地村)으로 불렸고, 그 밤나무는 사라수(裟羅樹)라는 이름을 얻었다. 원효의 탄생을 붓다의 출현에 비견하여 붙인 이름들이다.
원효는 청소년 시절을 진평왕대[579~631]의 말기에 보냈는데, 젊은 날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15세쯤에 출가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는 젊은 날 수행에 몰두하던 구도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원효의 총명은 생이지(生而知之)로 표현되었고, 스승을 따라서 배우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런데, 「송고승전」에서는"스승을 따라 배우되 일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구도자 원효는 각 방면의 스승을 찾아서 배움을 청했을 것이다. 그는 낭지(朗智), 보덕(普德), 혜공(惠空) 등으로부터 배운 적이 있다. 원효에게는 좋은 벗이 있었는데, 의상(義相)은 그의 도반(道伴)이었다.
그가 육두품이 아니라 오두품 출신이란 주장도 있다. 진골귀족이 아닌 좀더 낮은 신분인 그의 출신 성분이 그로하여금 좀더 민중에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삼국유사』의 원효전기의 제목도 「원효불기」(원효가 거리낌이 없음)라고 있는데 이는 그의 자유인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수도에 전념하다가 의상과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결심한다. 첫번째 유학시도는 실패하고, 두번째 시도 때 비를 만나 잠시 토굴에서 잠을 자다가 모르고 시체 썩은 물을 마셨는데, 모르고 마실때는 달고 맛있었으나 아침에 깨고 알아채니 토를 하였다. 그때 모든 것은 마음의 장난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그 길로 유학을 그만두고 국내에서만 활동한다.
원효의 생애에서 또 한가지 커다란 사건은 파계를 하여 요석궁의 과부 공주와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일이다. 그는 그 길로 소성거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거사로서 평생을 살았다. 사실 그는 승려로서보다는 재가의거사로서 살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수많은 저술을 하였지만 앉아서 저술만 한 것이 아니라 민중속에서 직접적인 교화활동을 많이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중요한공헌을 하였다. 수많은 저술을 하면서도 다른한편으로는 진정한 민중불교를 실천한 사람이 원효였다. 귀족적인 불교를 널리 민중속으로 전파하여 미천한신분의 사람들까지 불교를 알게된데는 원효의 공이 컸다. 원효는 686년에 70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IV. 원효의 주요 저서 및 사상
그는 불교의 많은분야에 대해서 폭넓게 연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현존하는것은 20여종이지만 100종 가까운 저술을 한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고려시대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에의하면 44부82권이 원효의 저술이지만 조명기의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에서는 98종류의 서목을, 동국대학교불교연구소의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에서는 86종류의 서목을 열거하고있다. 원효의 저술로 인정되어 한국불교전서 제1책에 수록되어있는 현존작품은 다음과 같다.
『대혜도경종요』 | 『법화경종요』 | 『열반종요』 |
『미륵상생경종요』 | 『무량수경종요』 | 『아미타경소』 |
『보살계본지범요기』 | 『금강삼매경론』 | 『대승기신론별기』 |
『대승기신론소』 | 『이장의』 | 『대승육정참회』 |
『발심수행장』 |
이 밖에도 잔본(残本)으로 전하는 『화엄경소』、『본업경소』、『범망경보살계본사기』、『판비량론』、『중변분별론소』등이 있고, 『심문화쟁론』、『해심밀경소서』、『미타증성게』 등의 20여 종의 저서가 불완전한 형태로 남아오고 있다.
원효는 그 관심의 방향이 다방면에 이르지만, 그 핵심은 '화쟁'과 '일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의상과 원효를 배출한 통일 신라 전후의 시기는 가히 한국불교의 사상사의 황금기라 할만하다. 특히 한국인들에 의한 불교사상의 이론 탐구와 전개는 지금까지 이때를 그 정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양한 불교 이론들의 활발한 유통은 당시의 불교인들에게 긴박하고 절실한 사상적 과제 하나를 부여한다. 하나같이 부처를 설주(說主)로 내세우나 그 내용은 상이하기조차 한 다양한 불교 이론 들을 일관되게 처리할 수 있는 통합적 관점의 수립이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동일한 지향의 상이한 형식과 서술들, 층차가 심한 논리 전개의 상이한 수준들, 상호 이질적으로까지 보이는 다양한 이론들을 어떻게 일관성 있고 질서 있게, 그리고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그것들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묶어 모순 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상위 이론이나 관점은 무엇일까?
원효의 화쟁 사상 소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원효는 화쟁사상에서 찾았다
화쟁은 언어로 표현된 이론적인 다툼을 화해시키는 것이므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언어에대한 잘못된 이해가 쟁론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원효에 의하면 언어의 본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와 진리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다. 그리고 둘째, 우리는 언어로 진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는 한계를 갖는다. 한편으로 우리는 언어로 진리를 표현할 수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진리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이해 위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화쟁의 방법을 말할 수 있다. 화쟁의 방법은 세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모든 이론들을 부정한다. 그러나 부정만을 한다고 해서 집착이 없어진다고 볼수는 없다. 부정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둘째 방법인 긍정과 부정의 자재(自在)가 필요하다. 긍정과 부정의 자재를 다른 측면에서 표현하면 '동의하지도 않고 이의도 제기하지 않으면서 설한다'는 방법이 있다. 태도의 문제를 중시해서 설명한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화쟁의 방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경전들의 내용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다.
원효는 화쟁으로 전체 불교이론들을 바라보아 실천적 견지에서 각각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화쟁은 여러 불교이론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작업은 아니다. 엄밀한 논리로써 화쟁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실천의 문제로 연결된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당대의 교학적 쟁론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인간사의 모든 쟁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원리들도 밝혀집니다. 첫째는 "각 주장의 부분적 타당성(一理)를 변별하여 수용한다"는 것, 둘째는 "모든 쟁론의 인식적 토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지평(一心)을 열어야 한다"는 것, 셋째는 "언어 확각에서 깨어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쟁 논법을 구성하는 세가지 원리의 탐구에는 미진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각 주장의 부분적 타당성(一理)을 그럼 어떻게 식별해 낼 수 있는가?>의 질문에 대한 탐구에는 미진한 점이 있습니다. 그 대안으로서 '견해의 계열(門)'을 구분하는 원효의 화쟁 논법을 주목하겠습니다.
'일리一理 수용하기의 성패는 '일리 식별력'에 달려 있고, 화쟁을 위해서는 부분적 타당성에 대한 식별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원효가 전개하고 있는 화쟁의 논의들에서는 '저마다 일리가 있다'는 식의 화쟁 방식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견해에 내재한 일리들을 변별해 내려면 각 견해의 의미 맥락을 잘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효의 화쟁 논법에는 이런 견해의 서로 다른 의미 맥락을 제대로 식별하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구분을 위해선, '부분적 일리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이 우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불충분하고, 화쟁 논법이 보편적 호소력을 가지려면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를 위해서, 원효의 '견해 계열'(門)의 구분을 통해 화쟁하는 논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원효는 '견해/주장의 조건적 타당성을 성립시키는 인과계열 혹은 '견해 계열의 의미 맥락'을 '문'이라고 표현합니다. 원효의 논법은 이런 문을 구분한 후, 그에 의거하여 일리를 포착하고 '저마다 일리가 있다'면서 상이하거나 반대되는 견해들을 포섭적으로 화쟁하는 원효의 화쟁 논법은 문門의 구분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 문門 구분의 원천은 모든 것을 조건인과적으로 수립된 것으로 파악하는 붓다의 '연기적 사유방식'입니다. 합리적 통찰, 진실에 상응하는 견해 주장은 언제나 '조건적'이어야 하고, 자기 견해의 수립 조건들을 인과적으로 포착하여 밝히려는 '조건 인과적 진술'이어야 합니다. 즉, 원효의 '문 구분을 통한 화쟁'은 (중관학파적 그러나 동시에 붓다적) 연기적 사유에서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원효 사상의 문 구분은 어디서 유래했나? (문 구분과 화쟁론)
적어도 통섭이나 화쟁의 통찰을 전개할때 사용되는 '문 구분'의 '문'은 '일련의 타당한 인과계열' '조건적으로 타당한 의미맥락'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원효는 이 '문 구분 사유방식'을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一心二門에서 포착하여 발전해간 것으로 보입니다. 『대승기신론』은 모든 불교이론을 두개의 문(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으로 분류한 후, 그 두 문을 펼쳐내고 포섭하는 자리에 일심을 놓는다. 진여문(眞如門)도 생멸문(生滅門)도 일심(一心)에 기대고 있다.
진여문(眞如門)은 '마음에 의거하는 참 그대로의 측면/맥락' 의미,
생멸문(生滅門)은 '마음에 의거하는 분별 동요의 측면/맥락 의미
'마음'이라 부른 현상은 그 발생조건에 따라 2가지로 나누는 것이 일심이문一心ニ門의 기본 취지이다. 무지의 영향력을 극복하면 진여문에 들고, 무지의 영향력에 굴복하면 '사실왜곡의 경험지평(生滅)인 생멸문(生滅門)에 든다.
"두 가지 문을 펼쳐 놓는다'(開二種門)는 것은 두 번째 의문을 제거하는 것이니, '[진리에 들어가는] 가르침의 문'(敎門)들이 비록 많이 있지만 처음 수행에 들어가는 것은 두 가지 문맥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참 그대로인 측면'(眞如門)에 의하여 '[빠져들지 않고] 그치는 수행'(止行)을 익히고, '[근본무지에 따라] 생멸하는 측면'(生滅門) 에 의거하여 '[사실대로] 이해하는 수행'(觀行)을 일으키니, '[빠져들지 않고] 그침'(止)과 [사실대로] 이해함'(觀)을 함께 운용하면 '온갖 실천 수행'(萬行)이 갖추어지고 이 '두 가지 문(眞如門/生減門)으로 들어가면 [진리에 들어가는] 어떤 문빼과도 다 통한다. 이렇게 의문을 제거하면 수행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효는 '삶의 내용을 구성하는 두가지 조건인과 계열'(二門, 즉 진여문/생멸문)을 각각 지止 수행과 관觀 수행에 배정한다. 지止(samatha)는 '분별과 번뇌의 동요가 그친 국면'이므로, "참 그대로인 측면 = 진여문"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관觀(vipassana)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관찰 수행'이다. 따라서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대상들'을 조건으로 성립한다. 그래서 원효는 생멸문에 의거하여 관행을 일으킨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진여/생멸 二門 구별에서 포착한 '문 구별의 연기적 사유'를 다양한 유형의 이문 구별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하게 분석한 二門들의 '통섭적 관계를 밝힘으로써 배타적으로 엇살리는 이론과 주장들이 화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원효는 中觀派의 '연기' 뿐만아니라, (유가행파의) 唯識學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특히 『大乘起信論』의 해석과 발휘에 있어서 韓 中 佛敎에 모두 중요한 영향을 일으켰다. 『起信論』에서 유식학의 영향을 기초로 하여 원효는 ‘和諍’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실제적으로 불교 전체의 ‘敎判’에 대한 것이었으며, 또한 『起信論』과 화엄학의 旗幟 아래 融貫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원효의 화쟁사상은 바로 공과 중도의 관점에서 해석 가능하다. 원효의 중도적 사유 방식은 공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원효의 공에 대한 이해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 와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 및 『금강삼매경론』 등에 의거해 이해된다.
불교의 관점에서,
진정한 지식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자의 지식"을 들 수 있겠고, 신념이나 의견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의 지식"을 들 수 있겠다.
이 두 종류의 지식을 구분하는 기준은 철저히 공의 원리에 입각하여 대상 세계의 모습을 파악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혹은 철저히 공의 원리에 입각하여 인식 주관의 양태를 파악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양대 학파인 중관학파와 유식학파는 바로 존재의 모습을 공의 원리에 의거하여, 그리고 존재의 모습은 다름 아닌 인식 주관의 현현이라는- 관점 아래에 서 인식 주관의 양태를 공의 원리에 의거하여 바라보고자 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중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느 하나의 고정된 관념에 집착하려는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공의 원리에 의한 사유 방식을 달리 표현하면 중도의 사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공은 다양한 의미로 파악된다. 범어 공(sunya)의 번역으로 있다(有)의 반대로 쓰인다. 그리고 空는 실체가 없다는 부정적 의미와 명정하다는 긍정적 의미 양측을 가진다. 나가르주나에 의한 중관학파는 붓다 사상을 재인식하며 아비달마와 그 입장을 달리하는 '공의 사상'을 통해 사상적 기반을 획득했다. 그 내용은 실재를 확립하려는 사상적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관학파의 삼자성은 인식의 대상쪽에서 말하면 3가지 존재 형태이고, 인식의 대상은 결국 인식 주관의 현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3가지 마음 형태이다.
(이제) 원효의 사상에서 보이는 대승불교의 독창적으로 변용된 중관학적, 유식학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겠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의 대의문에서 금강삼매경의 핵심내용을 일심(一心)과 삼공(三空)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일심은 결국 삼공을 통해서 드러나는 긍정의 측면이라고 한다면 삼공은 일심의 근원에 도달하는데 부정되어야 할 집착의 타파이다. 여기서 원효가 3가지 공으로 삼은 것은 공상空相, 공공空空, 소공所空이며, 여기서의 空은 '머무르지 않는다, 공적하다'의 뜻이다. 공상이란 "차별적 현상계가 부정된 무차별-평등의 공간", 공공이란 "무차별이 부정된 차별적 현상계", 소공이란 "앞의 空相과 空空을 함께 가르킨다".
그리고, 공상이란 진제, 공공은 속제에 해당된다. 공상은 ①공공을 반대함에 의해 얻어지는 진제 개념과 함께 ②는 앞의 과정을 통해 무분별지를 획득하고 존재 개념을 여실히 파악한 진제 개념이다. 이런 ①②개념은 공공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所空은 공상과 공공을 함께 부정함으로써 드러난 속제와 진제는 결국 같은 모습도 아니며 다른 모습도 아닌 일심으로 귀결됨을 나타내준다. 여기서의 '공', 즉 '소공도 공하다'고 할 때의 공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 '진真도 아니고 속俗 도 아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제에 의거하여 중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중관적 사유 방식을 원효 나름대로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효의 일심 사상 소개
원효의 사상은 크게 화쟁사상과 일심사상을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그 근본원리의 자리를 일심一心이 차지하고 있다. 원효 사상과 삶을 일관하는 핵심 원리가 일심에서 나오고 있음은 모든 원효 사상 연구에서 공히 지적되고 있다. 원효 사상이 보여주는 통섭적 기능 역시 일심을 그 원천으로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일심사상의 역사적 배경을 보자면 원시불교이래의 마음을 중시한 이론들이 모두 중요하 지만 직접적 연결은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에서 찾을 수 있다. 여래장사상은 모든존재는 여래가 될가능성을 그안에 가지고 있다는, 다른말로하면 모든중생의 본성이 여래라는 이론이다. 여래장사상은 초기의 누구나 여래가될 가능성을 갖고있다는 이론에서 유식의 알라이(alaya)식설과 연결되게된다. 모든 존재가 오로지 순수한것이 본성이라면 현실의 오염되고 순수하지못한것은 어디에서 온것인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있다. .그는 주로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에 근거하여 일심을 말하고 있다.
대승기신론(乘論) - 화엄종에 대해서
동일한 지향의 상이한 형식과 서술들, 층차가 심한 논리 전개의 상이한 수준들, 상호 이질적으로까지 보이는 다양한 이론들을 어떻게 일관성 있고 질서 있게, 그리고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그것들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묶어 모순 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상위 이론이나 관점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원효는 「大乘起信論」사상에서 찾았다.
"불교 경전들이 서술하고 있는 바는 비록 광대하지만 간략히 하여 말할 수 있으니, 一心에서 二門을 열어 「능가경」의 넓은 가르침을 총괄하고, 현상의 물든 것에서 본성의 청정함을 드러내어 「숭만경」의 그윽한 이치를 널리 종합하며, 한 맛으로 돌아가게 하는 「열반경」의 가르침과 「법화경」의 가르침, 「금광 명경」과 「대승동성경」이 설하는 三身의 極果, 「화엄경」과「보살영락경」의 四階의 깊은 인연, 「대품반야경」과 「대집경」의 넓고 호탕한 지극한 도리, 「일장경」과 「월장경」의 미세하고 은밀한 그윽한 가르침 등과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이런 類의 뭇 경전들의 핵심을 하나로 꿰뚫는 것은 오직 이 「대승기신론」뿐이구나
그리하여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一心二門이야말로 방대하고 다양한 불교 이론들을 포괄하여 일관되게 처리할 수 있는 통섭적 체계로 평가한다.
"열면 무량무변의 뜻으로 근본을 삼고 합하면 二門一心의 법으로 요체를 삼는다. 二門 안에서는 온갖 뜻을 허용하되 산만하 지 않고 한량없는 뜻이 一心에서 같아져 混融하니, 이런 까닭에 開合이 自在하고 立破가 無碍하다. 열어도 번거롭지 않고 합하여도 협소하지 않으며, 세워도 얻음이 없고 깨뜨려도 잃음이 없으니, 이것이 馬鳴의 妙術이며 기신론의 宗體이다."
그러면 그 일심은 과연 무엇인가? 원효는 그것은 모든 법 즉 모든존재의 근거라는 것이다. 곧 현상세계의 질서나 모든 것이 이 일심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나타나는 것은 일심의 견지에서 포괄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일심은 상대적 차별을 떠나있다는 것이 원효의 견해이다. 일심이라는 것은 대상화된 어떤 것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상화해서는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한다. 일심은 영원하다거나 순간적이라든가, 또는 본성이 있다든지 본성이 없다든지, 형상이 있다든지 하는 등의 모든 상대적인 차별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일심은 모든 것의 근거이며 평등무차별하다. 따라서 일심의 근거에서 보자면 모든것은 근원적인 점에서 평등무차별하다. 일심은 그의 모든 사상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21)
(일심 > 불교대중화 연결)
V. 원효사상을 통한 불교의 대중화
그 시대 중국 당나라의, 대승불교 종파 중에서도 유식론과 유식론에 영향을 받은 법상종에서는 일천제(一闡提)는 성불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갖고 있었다. 비록 신라의 유식론 전파에 공헌한 원측은 신유식과 구유식을 합치려는 노력을 하면서 일천제도 성불할 수 있다는 일성개불설(一性皆佛說)을 내놓았지만, 중국의 법상종과 법상종의 승려들은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내놓으며 일천제는 성불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원효는 『十門和諍論』에서 모든 중생이 같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과 특정한 중생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주장을 검토하면서, 원효는 철저하게 대승불교의 근본 사상과 『대반열반경』에 기초하여 모든 중생의 불성이 평등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렇듯 원효는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불성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중생이 미혹하여 자신의 성불 가능성을 믿지 않으므로 불보살의 도움을 빌어야 한다고 하였다.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보리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미타불을 믿고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염불의 중요성을 알렸다.
신라 중대 7세기 중반 불교 대중화 운동의 전개와 함께 사람들이 쉽게 불교를 접하고 자신의 바람을 기원하는 신앙의 보편화가 이뤄졌다. 이 중, 현세에서의 안락을 바라는 '미타 정토신앙'이 원효에 의해 대중신앙으로 확립되었다. 원효는 범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교학을 마련하고 스스로 파계한 뒤, 속인의 옷을 입고 박을 도구로 만들어 무애가(無碍歌)를 세상에 유포하고 천촌만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나무꾼이나 장사치도 부처의 이름을 알고 귀의한다는 뜻인 '나무(南無)'의 칭호를 부르게 되었다.
원효의 미타정토사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저술로 남아있는 것은 「무량수경종」와 「불설아미타경소」 및 「유심안락도」가 있는데, 그중에서 『유심안락도』는 원효가 사망한 후에 번역된 경전인 「不空羂索神變眞言經」이 인용되어 있고 사상적인 면에서도 원효와는 다른 점 때문에 원효의 저술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IV. 원효의 영향과 유산
元曉大師는 佛國淨土에 ‘眞俗’, ‘邊中’, ‘有無’, ‘是非’ 등의 구분이 없음을 드러내고자 하면서 여러 종파를 統攝으로 融合하고자 하였다. 大師의 ≪十門和諍論≫에서 제기된 “和百家之異諍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사상으로 중국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원효 사후 그의 삶에 대한 최초의 평전적 기록으로 보이는 서당화상탑비(誓幢和尙塔碑)는 이렇게 표현한다.
"[화상의 저술] 가운데 「십문화쟁론十門和靜論」은, 여래가 세상에 계실 적에는 온전한 가르침(圓音)에 의지하였지만, 중생들이 ··· 빗방울처럼 흩뿌리고 헛된 주장들이 구름처럼 내달리며, 나는 맞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말하기도 하고, 나는 타당한데 다른 사람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여, [그 상이한 견해들의 배타적 주장이] 황하黃河와 한수淡水처럼 큰 강물을 이루었다. · · · [공空을 싫어하고 유有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산을 [버리고] 골짜기를 돌아가는 것과 같고,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을 좋아하는 것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청색과 남색은 바탕을 같이하고, 얼음과 물은 근원을 하며, 거울은 모든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이 [수천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과 같다. · · · [유有와 공空에 관한 주장들을] 통하게 하고 화합하게 하여(通融) 서술하고는 「십문화쟁론」이라고 이름하였다. 수많은 사람들 이 [이 책에] 동의하며 모두 '홀륭하다!'고 칭송하였다. 또 「화엄종요華嚴宗要」는 진리는 비록 근본적으로 하나이지만 · · · [당나라에 왔던 진나陳那, Dignaga의 문도가 「십문화쟁론」을 읽고는] 찬탄하여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십문화쟁론」을] 범어로 번역하여 곧 (?)사람에게 부쳐 보냈으니, 이것은 [바로] 그 나라(천축) 삼장三蔵법사가 [「십문화쟁론」을] 보배처럼 귀하게 여기었던 까닭에서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大師는 一生에 걸쳐 大略 80余部200余卷의 저술이 있었지만 현재는 22種(21, 1종 제외)만이 전해지며 그 중에서 ≪佛說阿彌陀經疏≫, ≪金剛三昧經論≫, ≪法華經宗要≫, ≪涅槃經宗要≫, ≪判比量論≫, ≪十門和諍論≫, ≪華嚴經疏≫, ≪大乘起信論疏≫, ≪起信論別記≫, ≪游心安樂道≫ 등은 한국의 佛敎 토착화에 주춧돌의 역할을 하였으며 아울러 中國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은 저술들이었다.
원효의 수많은 저술들이 중국에 여전히 流傳하는 상황 아래, 중국의 저명한 승려인 法藏과 澄觀은 일찍이 원효의 영향을 받았으며, 원효보다 150년 정도 뒤의 불교대사인 宗密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
[1] 석길암. "韓國 華嚴思想의 성립과 전개에 보이는 몇 가지 傾向性 - 智儼과 元曉, 智儼과 義湘의 대비를 통해서, pp.7-8
[2] 유식사상이란? 유식사상은 마음과 마음작용을 모든 인식과 존재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의 인식작용(식)에 달려있고 그 인식하는 마음의 주체가 알라야식이라고 합니다. 그런 심식(마음의 인식작용)이 외부로 드러난 모습이 현상이라고 보고 모든 존재의 성질과 모습을 탑구하며 중국 교학에서는 '법상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장이 <성유식론>, 해심밀경 > 등으로 체계화한 유식사상을 신유식(新唯識)이라고 합니다. 안이비설신 - 5식, 총괄하는 의식 6식, 심층의 7말나식 심, 근저에서 모든 행위 발생하게 하는 근원 존재 제8아라야식 '진여'라고 한다.
[3] 원효사상연구 15-19
[4] 김말환,2000 "원효의 불교대중화에 있어서 淨土信行," 정토학연구, vol.3, pp.244
[5] 원영만(정산). "元曉의 불교대중화 일고." 정토학연구 10 (2007) 414
[6] 원효의 저작인 금강삼매경론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 논에서는 원효의 일심 사상과 여래장 사상의 연관성이 제시되고 있다. 논은 어떻게 하면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중심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7]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 86
[8] 원효사상연구 229-232
[9] 원효사상연구 참고
[10] 원효사상연구 82
[11]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 77
[12] 원효의 화쟁철학 82
[13] "開二種門者, 遣第二疑, 明諸教門雖有衆多, 初入修行, 不出二門,依眞如門, 修止行, 依生滅門, 而起觀行, 止觀雙運, 萬行斯備, 入此二門, 諸門皆達. 如是遣疑,能起修行也."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1-701c)
[14] 원효의 화쟁철학 81-84
[15] 원효의 화쟁론과 종밀의 원용설 102
[16] 한국의 불교사상 참고
[17] 한국의 불교사상 127-132
[18] 원효사상연구 19
[19]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 73
[20] 원효사상연구 82
[21]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 75
[22] 최재영, 화쟁사상으로 바라본 원효의 정토사상 31쪽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佛性)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는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다. 모든 중생이 똑같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
[23] 元曉, 『十門和諍論』, 『韓國佛敎全書』, 卷1, 839上. : “又彼經言 衆生佛性不一不 二 諸佛平等猶知虛空. 一切衆生同共有之 又下文云 一切衆生同有佛性. 皆同一乘一因一 果同一甘露. 一切當得常樂我淨是故一味. 依此經文 若立一分無佛性者. 則違大乘平等法 性 同體大悲如海一味.”
[24] 국가편찬위원회편, 『신앙과 사상으로본 불교전통의 흐름』(동아출판, 2007) 108-109
[25]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 74
[26] 원효의 화쟁철학 130
[27] 김세환. (2012). 论元晓不羁. 중국학, 43, p.126
[28] Wei Zhong Yang, 「원효의 화쟁론과 종밀의 원융설」 참고
≪参考 文献≫
••••••••••••••••• 【史料】 •••••••••••••••••
『三國遺事』
『宋高僧傳』
『十門和諍論』
•••••••••••••••• 【단행본 및 논문】 ••••••••••••••••
국사편찬위원회 편,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전통의 흐름』 (동아출판, 2007).
동국대학교 불교간행위원회, 한국불교전서편찬위원회, 『한국불교전서』, (서울: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박태원, 『원효사상 연구』 (울산: UUP, 2011).
박태원, 『원효의 화쟁철학 : 문(門) 구분에 의한 통섭(通攝)』 (서울 : 세창출판사, 2020).
박태원, 『십문화쟁론 : 번역과 해설 그리고 화쟁의 철학』 (서울: 세창출판사, 2013).
한국사상사학회 편, 『한국사상사입문』, (서울: 서문문화사, 2006).
한국불교원전연구회 지음, 『(인물로 보는) 한국의 불교사상』, (서울: 예문서원, 2004).
허남진 外 編譯,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Buddhism of threekingdoms and unified Silla),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5).
원영만, 「元曉의 불교대중화 일고」, 『정토학연구』 vol.10, 2007.
조은순, 「元曉의 成佛論과 佛敎大衆化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20.
김말환, 「원효의 불교대중화에 있어서 淨土信行」, 『정토학연구』 vol.3, 2000
최재영, 「화쟁사상으로 바라본 원효의 정토사상」, 『忠南大學校 大學院』, 2016.
김세환, 「论元晓不羁」, 『중국학』 (43), 2012.
Yang Weizhong, 『元曉 '和諍' 論與宗密 '圓融’ 說』, 『佛敎 學報』 60, 2011
: 이 글은 24학년도 1학기 한국사상사(HIS3041) 강의를 통해, 2024년 3월 21일에 제출한 과제 자료입니다.
[#東洋史] 원효의 화쟁 사상 및 불교대중화 -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 by Jaehyun Park is licensed under CC BY-ND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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