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 잊혀진 우리 역사 속의 북방민족 : 옥저와 읍루인의 이야기 -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잊혀진 우리 역사 속의 북방민족 : 옥저와 읍루인의 이야기 -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 옥저와 읍루에 대한 강의입니다. 아울러 극동지역의 민족지와 러시아 고고학 자료들도 소개합니다. 두 편에 나누어서 올립니다. 관련해서 자료가 궁금하시면 도서관에서 강인욱 외 2008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이나 강인욱 2009 [춤추는 발해인]을 보셔도 좋습니다.

[박물관역사문화교실] ㅇ 강연자: 강인욱 (경희대학교) ㅇ 분류: 아시아 및 서양 ㅇ 주제: 잊혀진 우리 북방 민족들 ㅇ 키워드 - 옥저의 발견, 주요 유적·유물, 역사의 옥저와 비교 - 읍루와 숙신, 주요유적, 중요성 및 의의 [History and Culture Lecture Online Series] ㅇ Speaker: KANG In-Uk (Kyung Hee University) ㅇ Category: Asia and the West ㅇ Subject: Forgotten Northern Races ㅇ Keywords - Discovery of Okjeo, major remains and relics, and comparison with Okjeo in history - Eumnu (C. Yilu) and Suksin (C. Sushen), major remains, importance and significance 본 영상은 소장용으로 촬영 된 것으로 화질과 음향이 고르지 못 할 수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박물관누리집https://www.museum.go.kr/site/main/home


사진: 국사교과서 속의 옥저와 읍루

몽골이나 시베리아를 

옥저나 읍루, 동예 같은 존재. 이들을 고고학적으로 풀어봅니다.

두만강 유역의 발굴이라던지

두만강부터, 흑룡강, 송화강, 오수리강, 태백산맥의 강원도까지 이어지는 영역

국사교과서에서의 옥저와 읍루,

북한 중국, 러시아의 한국의 동북인데 여러 집단이 겹쳐있어

별로 역사기록이 남지 않아. 중국의 입장에서 별로 없어 기록이 없어

역사의 공백지대

남북한 문화제 이야기. 맨날 개성, 평양의 문화재

함경남북도의 문화재

수많은 철도이야기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함경남북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 

러시아와 중국을 조사


사진: BC 1 ~ AD 1C 문화 분포 & AC 2~3 읍루와 옥저 문화권

옥저는 남쪽, 북쪽에 있는 검은 선이 읍루의 문화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초기 삼국시대, 2세기 ~ 3세기

이당시 기후가 추워지면서 위에 있던 사람들이 내려오는 형상

한반도 일대에 다양한 옥저 계통 문화. 북쪽에는 읍루라고 하는 두 계통의 문화가 나옵니다.

하나씩 밝혀가고 있습니다.


사진: 누가 옥저를 발견했는가?

1956년 한러국경을 조사한 러시아학자가 발견

옥저와 읍루를 구분

1860년 북경조약으로 러시아땅이 된 연해주를 조사

러시아가 1860년도에 현지의 블라디보스토크의 점령. 그리고 곧바로 러시아 학계는 그 당시 최고의 학자들을 투입해서 한러 국경지역으로 조사한다. 일치감치, 와서 조사. 1956년도에 6.25끝나고 러시아 사람이 두만강까지 와서 발굴. 그것이 여기에는 옥저가 있었고, 읍루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밝혀냅니다. 


사진: 연해주 옥저유적 불로치카

한국의 관심 : 발해발굴관련

이게 하나의 좋은 예, 2005년이 동북공정이 심화되던 해. 그래서 전국적으로 발해유적 팀을 형성. 한국팀이 조사하고 있던, 옥저 유적 발굴단에 국회의원이 9명 방문. 옥저가 있고, 그 다음에 그땅에 발해가 살았다. 이것은 선 발해 유적입니다 라고 소개. 국회의원 방문 때문. 이분들이 처음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현지 가면, 황금나오나? 안나옴. 텐트치고 살고 있음. 고고학자 맞나? 난민촌보다 심각하다 농담. 이렇게 러시아일대를 발굴해서 옥저 유적을 발굴. 두만강 일대는 그전부터 계속 한일부분이었던 옥저, 읍루가 있어왔어. 읍루는 후에 말갈, 여진, 청나라를 건국. 그 모든 역사의 축들. 옥저와 발해를 러시아에서 발굴. 중국에서는 발굴은 꿈도 못꾸기 때문에. 


사진: 북경조약과 블라디보스톡의 탄생

피서산장 북경조약 채결지 (사진)

고고학이 아주 옛날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북경조약이 채결. 청나라 말기 때 함풍제라는 황제가 적당히 막지 11~16KM정도 되는 지역이 과거 조선과 맞붙습니다. 이것 때문에, 중국은 태평양으로 못나가, 과거 청나라의 실수. 그때 러시아는 이미 무수리 강으로 국경을 막으라는 내심을 가지고 조약을 채결. 그래서 물방국치. 국치를 절대로 잊지 말자. 한국은 유라시아로 나아갈때, 덕분에 16KM덕에 러시아를 통할 수도 있어 좋다. 11~16KM는 물길의 차이. 


연해주의 고려인들

러시아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바로 옥저의 땅이 있어. 이 사람들이 스탈린 시절에 강제이주. 그래서 러시아에 상트-페테르부르그의 한국유물 존재.

사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의 한국 유물

2000점의 한국 유물. 구한말 모았던 유물들. 엘리밋따제 박물관에는 없어. 그 강 건너에 있어. 강 건너가면, '쿠스트바'라는 곳인데 전세계의 것이 다모아져 있어. 아관파천 때 괴베르라는 공사가 고종에게서 많은 유물을 받았다. 연해주에서 발견된, 한국 사람들의 한약. (사진). 구한말, 한번도 안쓰고 포장재로 생생하게 남아있는 유물. 


녹둔도, 잃어버린 우리의 섬.

녹둔도 하면 이순신 장군. 여진족을 막아내다가 해군으로 발령. 녹둔도의 위치는 확실치 않아. 두만강과 러시아 사이의 섬으로 되어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확인 불가능. 여기는 고종때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지역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어떻게 옥저와 읍루를 알았을까? (사진)

얀키프 비추린 신부 (1806~1821년 복무, 10대 사제)

중국 25사 번역

동이족, 고구려,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

10개 언어에 능통

 튀르크 계통의 터키 계통 사람. 푸시킨과 동시대 사람. 200년 전에 중국에 들어가서 모든 한문책들을 번역했다. 동북공정에 부여와 고구려를 중국사로 하지만, 이미 200년 전에 비추린 신부가 체계를 잡았기 떄문에. 이 사람이 중국에 있을 때, 바로 옆에 있던 건물이, 조선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던, 한국 사신들이 살던 지역. 이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옥저와 읍루를 비교 가능하게 되다.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먼저 이야기 할 때, 먼저 얀키프 비추린 신부를 이야기. 






나선정벌로 시작된 한-러 역사 연구의 인연

1.나선정벌과 알바진인

나선정벌(1655, 1688년)

알바진요새에서 45명은 북경으로 귀순

중국정부는 그들의 종교(러시아정교)를 인정하고 살게함.

(서양에서 기록된 알바진 요새 전투)

(중국 기록의 알바진전투)

(의화단 사건에서 살아남은 알비진인)

나선 정벌때 중국으로 왔었던 러시아 사람들의 후손. 이 사람들에게 예배를 주제하기 위해서 파견한 신부. 그게 바로 비추린. 그런데 포교 금지. 이 45명에게만 예배. 나선정벌, 그리고 고고학. 그때 한국이 청나라를 돕지 않았다면, 러시아-중국 국경은 흑룡강이 아니라 더 아래로 내려와 있었을 것. 그래서 예배를 위해 온 비추린 신부. 이 비추린 신부에 의해 한국사가 러시아에 소개됨.


옥저의 주요 유적과 유물(사진)

고고학적 명칭 : 그로우노프카(러시아) 團結문화(중국)

위치 : 러시아 연해주, 중국 연변, 함경북도

주거지 : 중부지역 원삼국과 유사한 呂자형 주거지

* 'ㄱ'자형, 'ㄷ'자형의 구들시설

* 동아시아 온돌의 기원

무덤 : 석관묘, 세형동검 발견

처음 발견된 동네가 크로우노프카라는 시골에서 발견.

이후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쪽, 중국 연변에서 발견. 그래서 단결 문화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나의 옥저인데 러시아, 중국, 북한이 따로따로 연구를 한다. 한반도 중부지역, 한국 한강유역, 중부지역과 유사성이 높다. 사진 , 선사시대 토기를 보시면, 구분이 안될 정도로 유사합니다. 옥저가 전세계에서 옥저를 한마디로만 하면, 온돌을 최초로 발명한 장소. 그리고 세형동검. 세형동검은 남한과 관계가 아주 많아. 


주요 유물

석기: 마제 석기

철기 : 노동도구 위주임

청동기 : 청동 그릇편, 낚시바늘, 구슬, 방울 등

토제품 : 방추차

뼈제품 : 바늘, 갑주, 낚시바늘, 장신구 등

: 철기가 아주 발달되었다. 청동기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토기 : 경질무문토기 - 한반도 중부지역과 유사

    : 기원전 4세기 ~ 서기 1세기

역사기록에 북쪽의 읍루와 대립(고고학적으로 증명)



[옥저 유역의 입지]

일송정 유적

: 가장 선호하는 땅이 배산임수로, 앞에 산, 그리고 강이 흐르는 지형. 연변에 있는 유적인데요. 사진 왼쪽은 현재 연변, 사진 오른쪽은 현재 러시아. 일송정이 선구지에 나오는 그 일송정은 아닙니다. 다른 이름만 같은 지역. 옥저인들의 주거지는 집 자리의 규모 현대와 같이 충분히 넓어. 농사를 짓는 민족이기 때문에, 땅이 비옥하면서도 방어하기 쉬운 지역을 찾아. 


크로우노프카 문화(주거지)

패트로프 섬 1호 주거지와 주조소

온돌이 발견. 'ㄱ'자로 만든 형태의 구조. 원래 위험한 구조. 방바닥의 틈에서 연기가 새면 유독가스가 깨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 공기가 꺼꾸로 유입이되어 위험할 수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방바닥으로 난방을 하려는 사람들은 몇번 있었는데, 옥저만큼 성공한 사람들이 없어. 옥저에서 기원전 4세기에 최초 등장. 다른 지역은 기원전 1세기가 되어서야 한국 남부, 중국 북쪽은 기원전 1세기에서야 등장. 


블라디보스톡 - 한국 문화의 요람

블라디보스톡 박물관에 있는 한국계 유물. 칼과 거울이 같이 발견된다. 이것은 무덤에서 나온 것. 이 칼과 거울은 일반인들이 쓰던 것이 아니라 샤먼들이 쓰던 것이다. 종교적 목적. 이것은 우연히 같은 것이 아니라, 남한의 세형동검과 같이 종교적 관습이 유사한 사람이 살았다는 의미. 아마 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농사문화가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해주 세형동검문화의 계통 : 한반도 + 길림지역 유입

이즈웨스토프카, 쉬코토보, 시니예 스칼르이

그래서 연해주에 가서 조사를 하면, 이것 외에도 많은 세형동검들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내일 연해주 가는 것도 새로운 자료가 있기 때문에, 그 밖에, 크로우노프카 문화(유물). 시루가 나와. 단순하게 곡물을 먹은 것이 아니라, 곡물을 가공해서 먹은 것. 토기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데, 한마디로 옥저인들은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 밥 먹기도 부족한데 떡을 만들리는 없어. 두만강 유역이라 엄청 추워. 추우니까 농사가 안돼. 그런데 어떤 노하우로 추위를 극복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아주 대량으로 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기후 변화?). 시루 뚜껑 편. 방추차: 옷을 잣는 도구. 아마 삼배옷을 입고, 겨울에는 가죽옷을 입었다. 그 다음, 의외의 발견.


주거지 (불로치카 1호), 양귀비씨앗 발견.

의외의 발견, 여름에 발굴하고 러시아에 보냈다가 겨울에 다시 확인하러 감. 탄화가된 곡물 뭉치가 발견. 조나 순수, 기장이 발견. 쌀은 아직 발견 안돼. 그런데 알고보니 양귀비 발견.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효가 강하지 않았을 것. 양귀비는 추운데서 자라면 약효가 없어. 대신에 깨같이 기름이 많기 때문에 성분을 짜서 쓸 수 있다. 아니면, 약간의 마약 성분이 있으면 응급 진통제로 쓸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양귀비 중에서 가장 이른 양귀비. 이제까지 양귀비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당나라때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름이 양귀비. 당나라때 널리 유행. 그 전부터 두만강에 있었던 것.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문제, 반년, 기름을 짜고 다양한 곡식들과 약초들을 개발해서 겨울을 지내고, 가정 상비약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발해 사람들 밑에 층에는요 거의 대게 옥저 인들의 유적 층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발해인들의 유적층 위에는요, 고려인들의 유적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인들은 이 지역에서 최초로 논을 만들어서 농사를 지을정도로 억척같이 살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북한에서 발굴된 것이 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옥저-부여 파트 국립중앙박물관). 처음에 발굴해보면 토기가 무문토기를 닮아 있지 않습니까? 한강유역, 춘천이나 강원도 일대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사람들이 내려와서 동예라던가 예맥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토기, 철기, 제련도구(불로치카 유적)

이것은 철기, 제철할 때 쓰는 주물 국자. 여기에 받침이 있는 토기. 여기는 고고야, 선사시대에는 두형토기. 옥저인들은 두 토기를 쓰기를 쓰고 있다고 기록. 읍루인들은 두형토기가 없다고 기록. 기록은 고고학으로 사실 확인. 



크로우노프카 문화(불로치카 석기)

반월형 석기 (반달돌칼),  땅을 가는 도구 일종의 돌 삽, 험한 땅을 파기위해. 귀한 철을 썻다가 망가지기 때문에,  철기도 썻지만 여전히 석기도 사용. 매우 험한 땅 + 철기의 소중함. 방추차 발견. 이것으로 실을 뽑아서 옷을 지어 생활.



온돌을 발명한 옥저인

2004년 연해주 불로치카 유적에서 발견된 기원전 2-1세기의 온돌

옥저, 민며느리제로만 유명, 기원전4세기에 온돌 발명, 세계의 우리 주거문화인 온돌은 환동해 추위의 적응한 산물, 옥저인은 강원도-한강으로 남하.

옥저인들은 밥을 지으면서 난방하는 온돌을 만들어. 신석기때 한번, 로마도, 알레스카에서도 온돌이 발견. 어쩌면 옥저의 온돌은 세계최초가 아니야. 최초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보급화는 옥저인들.  옥저인의 온돌은 전세계의 온돌의 기원. 겨울에 정말로 춥기에 가장 최고의 열효율과 밥을 지으며 만들 수 있는 방식. 이 온돌 문화는 확산. 가장 먼저 퍼진 장소는 바이칼, 바이칼지역의 흉노가 기원전 1세기 지역에 성을 만듦. 성터, 정착인들이 만든 성 이 뉴타운에 옥저인들의 온돌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하나 온돌이 나온곳, 한반도 남해안. '사천'에 섬이 있어. 늑도. 여기서 한반도 최초의 온돌 발견. 아마도 바다를 따라서 이동한 교역의 흔적. 나중에 삼국으로 널리 퍼져. 추후 고구려의 주요 겨울나기 수단.


옥저인도 아편을 즐겼을까?

중국을 파멸시킨 독약 / 동이족에겐 지혜의 유물 / 옥저 유적지 연해주 불로치카에서 양귀비 씨앗이 대량 발견 / 마약이 아니라 비상약 또는 식량으로 사용 / 통설은 서기 8-9세기

아편은 아니고 양귀비. 북방화, 추운 지역을 이겨내는 비결을 만든 최초가 옥저. 옥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북한-러시아-중국. 그러나 오직 한국은 러시아만 가능. 


우리 밥상의 대표적 환동해음식 : 명태

동태, 북어, 황태, 무태어, 그리고 민타이 / 정작 극동의 사람들은 안 먹는 물고기 / 17세기 중반 소빙기의 출현으로 한국바다에 출현 / 간도로 진출하는 우리 민족이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


폴체문화(분포도) (사진)

시베리아 호랑이로 유명한 산맥 지역. 산속에 살던 오랑캐들, 읍루인. 폴체문화. 러시아 사람들이 붙인 이름.

폴체문화(유물) (사진)

이 사람들은 옥저는 철기가 주로 농기구, 읍루인들은 철기가 주로 무기. 호전적 사람들. 농경도 짓지만, 짐승도 치고, 산속에 있던 사람들. 말갈-여진족으로 이어진다. 

토기: 다양한 문양의 토기

철기 : 매우 발달함

석기와 골기 : 석기-화살촉, 어망추, 숫돌, 장신구, 골기 - 갑주

생계경제 : 농경과 목축(수수, 보리, 돼지, 말) 등 복합경제 / 이후 물길-말갈 등으로 이어짐


폴체 문화(토기1)



옥저의 토기는 밋밋, 반질반질했음. (무문토기). 읍루는 무늬가 많다. 나팔형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야요이 문화와 기형이 똑같습니다. 폴체문화와 야요이문화와 뭔가 관련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눈에 봐도 앞에 있던 옥저문화와 구분됩니다. 옥저토기 & 읍루 토기는 확연히 구분된다. 발해의 말갈계통 토기라고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음.  토기의 실측도(사진). 아무르 폴체 문화(토기) 고베가 없다. 


아무르 폴체 문화(토기)

폴체 문화(철기)

아까 봤었던 옥거같은 경우는 기형이 단순하고, 기껏하고 시루하고, 밑에 각이 달린 두형토기 밖에 없었다. 고베라고 하는 것. 아무르 폴체에는 고베가 없습니다. 이러한 토기가 어디까지 북쪽으로 이어지는가? 캄차카 반도까지 이어집니다. 추운 산속에서 살았다. 폴체 문화(철기) 농기구 보다는 찰갑, 창, 검. 읍루와 옥저를 구분하고 이해한다는 것. 

폴체 문화(석기)



돌, 어망추. 그물에 달아서 던지면, 돌로 인해 가라앉아. 돌로 만든 창. 읍루 숙신족들의 창이 돌로 만들었다는 공자 기록. 방추차, 실을 뽑는 도구. 또 하나 옥도 나온다. 옥하면은 홍산문화. 극동지역도 그렇고 옥이 안나오는 곳은 거의 없어. 호전적이더라도 옥이 중요.


옥저와 크로우노프카문화 비교

총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옥저와 읍루의 차이, 그들의 역사기록은 얼마나 맞을까? 읍루 사람들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 진수라는 사람이 편찬. 옥저와 읍루에 대한 정보가 옳은 것은. 삼국시대 조조의 부장이었던 관구검이라는 사람이 고구려 침략. 고구려를 따라서 옥저까지 온다. 옥저를 다 몰살. 읍루까지 간다. 그때의 얻어진 정보가 옥저와 읍루에 대한 정보. 

* 옥저 기록 :

큰 바다를 따라서 거주한다. 

인구는 5000에 이른다. : 8헥타르 이상이 되는 평지에 살았다.

큰 대군이나 왕이 없고, 각 동네마다 장수, 우두머리가 있었다. : 실제로 집이 왕이나 귀족은 무덤이 크게 나와. 주거지가 별로 차이가 없다. 

고구려와 언어가 비슷하다

옥저는 나중에 낙랑으로 들어갔다. 함흥일대의 일제강점기때의 옥저성이라는 것을 발굴했었다고 합니다. 

특산품에 맥포(아마도 다시마 같은 것).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가 요오드가 부족해서 갑상선에 항진증이 발생해서 사망했다? ) 물고기와 소금, 생선이나 절여서 운송. 아마 옥저가 중요한 나라. 각종 해산물들. 두만강 유역은 해안이 복잡. 두만강 유역에 있는 해안선은 굴들이 많이 있다. 

지세, 토지는 비옥하다. 뒤에 산을 향하고 앞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배산임수. 

오곡이 잘자란다. 오곡:수수,쌀,보리? 아니고 다양한 곡식을 의미.



읍루와 폴체문화

흑룡강 옆에 있다. 그 북쪽을 아무도 모른다. 

오곡이 있고, 옥저와 달리 그저 있다고 기록 (반면, 옥저는 오곡이 풍부)

소와 말이 있다.

삼배옷

사람들은 다 힘이 쎄다

산속에 산다. 군장이 없다.

주거: 커다란 구덩이를 판다 (수혈식 지하 주거지) : 가심구제, 깊은 경우는 계단이 9계단이나 된다. 

추운 지역. 집안에 화장실을 둔다. 그리고 화장실 주변에서 산다. 

청석이란 돌로 화살을 만든다. (이미 이 당시에 철기 있는데, 왜 돌을 사용? 아마도 독을 묻혀 사용하는 특수한 용도)

특산품, 저공 붉은 옥과 단비가죽이 유명하다. 

화살을 정말 잘 쏜다.

두형토기 고베(저두)를 오로지 읍루만 쓰지 않는다. 

가끔씩 배를 타고 훔치고 다딘다. (해양활동?)


읍루의 이모저모 - 화장실을 방안에 둔 사람들


사할린 앞바다 발굴 장면. 커다란 집. 깊이가 2M가 넘는다. 파도파도 들어가는 출입구가 없다. 

이게 바로 최근에 발견된 연기구멍을 파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구조.

최근까지도 북극해에 살던 읍루인 후손이 쓰는 방식. 깊게 파지 않으면 안되는 날씨.

이것을, 러시아 사람의 기록에, 눈내린 날에 무덤같은 곳에서 연기가 퐁퐁나오는 것. 다들 웅크리고 앉아있어. 영하 30도인데 밖에 나가서 볼일보고 오면 큰일. 따라서 건물안에서 용변.

돼지를 좋아했다고 함. 제주도 똥돼지처럼 인분처리 용이었을 수도 있다.

여름에 보름간 연어가 올라옴. 연어는 삽으로 잡습니다. 너무 많아서 삽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 그곳은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물자가 풍부. 모피를 잡는다.


읍루인 : 돼지기름을 몸에 바른 사람들 (돼지비계로 만든 러시아 음식)

읍루인들은 돼지비계를 바른다고 나와있습니다.

공자님과 숙신 : 공자님과 숙신고사, (읍루이야기? 본래 숙신이야기), 청석으로 만든 돌화살의 이야기 / 실제 읍루인일까?

공자, 진나라 진공이 기러기 때가 날아가는데, 한 기러기에 화살이 꽂혀있어. 중국에서는 안쓰는 화살. 하늘이 멸망시키려는 뜻이냐? 공자 왈, 이것은 숙신들이 만들어 썻던 화살촉이다. 옛날에는 인과 예과 널리 퍼져서 멀리서 왔는데, 숙신이 이제는 오지 않습니다. 그럴 정도로 중국에서는 별로 모르는 지역. 


중국의 읍루공정 : 읍루를 중국사로!

1) 봉림성지의 발굴 이후 읍루를 중원에 복속한 문명국으로 대대적인 정비

2) 거리 및 광고판에 읍루

3) 청대의 전설을 들어서 봉림성지를 '읍루왕'의 왕궁으로 왜곡, 홍보



하바로스크에서 사진의 지역까지 읍루 영역. 그래서 읍루를 중국사에 편입하고자 함.

읍루의 북쪽 위쪽의 국경선 한계가 없다 기록. 이를 핑계로 추후의 영토적 야욕 내심.


1) 읍루 '신속부여' 기록을 전면에 내세움

2) 부여와 읍루의 신속관계를 강조

3) 중화문명의 질서에 편입되었음을 강조함

4) 향후 중국과 접경한 러시아 극동지역에 관심 연관


한국학자와 옥저/읍루의 조사

*주로 러시아 연해주지역에서 조사하는 한국연구팀


결론 - 경주는 유라시아의 출발점

한국문화의 세코드

1-황해를 거친 중국의 문화

2-초원에서 들어온 유목문화

3-연해주-북한-부산을 잇는 환동해문화

경주는 이 모든 문화의 집합채, 유라시아로의 출발점 / 한-일관계만으로는 부족한 부산 / 대륙, 그리고 세계로의 출발점


댓글모음 :

옥저에 대해서 고고학적으로도, 역사학적으로도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덕분에 요긴한 정보를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고대사의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는 좋은 연구를 하고 계시니 응원합니다 꾸준히 성과가 있기를 빕니다

일본총독부가 한반도로 끌어다 모아놨네요.왜곡시킴.동예가 연해주위부터 존재합니다.물개 바다표범은 추운데만 살거든요.

오호츠크해=옥저해 한자상고음 찾아보면 저는 척 으로 나옴. 오호는 오코 오크

Good 옥저의 한자풀이를 하니 논이네요? 혹은 우물인것 같기도 하고 ? 畓,井 단결이라면 논일할때나 김장할때 한데 어우러져하는 품앗이 문화네요? 크로노프스카도 그런의미인가요? 한데모여 단단해지는? 단결되는? 田

구다라(구, 공, 옥) 생식기 숭상 민족임. 구다라> 옥,저, 동예/ 왜, 왜가리(kim), 야요이(보지)

고조선의 세형동검광 다뉴세문경 이다


from : 2019년 4월 3일 강의 옥저와 읍루Youtube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22-07-02. Retrieved 2022-07-02.

from : [박물관역사문화교실]잊혀진 우리 북방 민족들Youtube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22-07-02. Retrieved 2022-07-02.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