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事] 기사모음 (2024.03~04) -3


'역대급 예우' 받은 미래에셋의 창립멤버 최현만 고문 …퇴직금 포함 105억원 수령
# 무슬림 유튜버 "인천에 이슬람 사원 건립"…실현 가능성은
# 대학병원이 죽어야 한국 의료가 삽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종훈 교수)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 [문화산책]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박서양이 선택했던 길
# 백정의 아들이 선사한 서양의학


'역대급 예우' 받은 미래에셋의 창립멤버 최현만 고문 …퇴직금 포함 105억원 수령, 인센티브와 함께 61억원의 퇴직금이 포함된 금액

미래에셋의 창립멤버 최현만 고문이 지난해 105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인센티브와 함께 61억원의 퇴직금이 포함된 금액이다.

미래에셋증권은 CEO이자 창립멤버인 최현만 고문의 성과에 따른 '역대급' 보상을 지급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18일 미래에셋증권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최현만 고문은 지난해 105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회사의 '연봉킹' 타이틀을 가져갔다.

최현만 고문은 지난해 총 105억5천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16억원가량의 급여와 27억원의 상여가 포함됐으며, 최 고문은 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하지 않고도 61억원 상당의 퇴직금을 받았다.

미래에셋증권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주요직위자 퇴직금 지급기준에 의거, 2016 이후 적립한 퇴직연금 부담금과 경영성과급 퇴직연금 납부액 그리고 전문경영인으로서 재임기간동안 성과 창출 및 지속가능경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회사에 기여한 성과를 고려해 지급된 33억3천4백만원의 퇴직공로금을 포함하여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퇴직소득 중 임원 퇴직 소득금액 한도 초과액은 올해 근로소득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최현만 고문은 금융투자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오너인 박현주 회장과 증권사를 설립한 개국공신으로서 회장자리까지 오르며 여의도의 '샐러리맨 신화'를 보여줬다. 다만 지난해 미래에셋그룹의 세대교체에 그 역할을 2기 전문경영진에 넘겨줬다.

이미 최 고문이 보유한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 전량은 박현주 회장의 가족 기업인 미래에셋컨설팅이 인수한 바 있다. 매각 대금은 450억원 수준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은 회사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고려한 멤버에 '적극적 예우'를 지급하겠다는 구상을 논의한 바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번 세대교체에서도 누구나 CEO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지난 2012년 구재상 전 부회장과 용퇴 당시 미래에셋그룹은 개국공신 멤'에 대한 성과 보상의 기틀을 잡아가는 단계였다. 10여년이 흐르고 최현만 고문과의 작별을 결단한 2023년의 미래에셋그룹은 키맨과의 작별에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세대교체 당시 미래에셋증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혁신적인 성과를 낸 경영진에 대한 대우를 체계화할 것"이라며 "CEO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임직원에게도 좋은 선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무슬림 유튜버 "인천에 이슬람 사원 건립"…실현 가능성은

구독자 552만명을 보유한 한국인 무슬림 유튜버가 인천에 이슬람 사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인근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17일 유튜버 A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3일 "여러분의 도움으로 인천 이슬람 사원 건설 토지 계약을 체결했다"며 "선교를 위한 기도처와 이슬람 팟캐스트 스튜디오를 지을 계획"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그가 사진으로 함께 첨부한 토지 매매 계약서에는 인천시 중구 영종도 운북동 땅(284.4㎡)을 1억8천920만원에 매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학병원이 죽어야 한국 의료가 삽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종훈 교수)

대학병원의 재정 시스템, 의사 수입, 응급 의료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 의료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체적으론, 대학병원에서의 수입 시스템과 검사료 설정이 어려움을 야기하고, 중증 질환에 투입되는 의사들의 수입이 부족하다. 일부 과는 힘들고 돈벌이가 어려우며, 의료 비용이 부담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응급 의료 시스템의 전달 채널이 무너지고, 중증질환 환자들의 치료를 보장하기 어렵다.

결국, 대한민국 의료는 미국과 비교해 수입 시스템의 문제로 의사들의 사명감을 잃게 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의 수가 시스템과 검사료 설정이 왜곡되어 중증 질환에 투입되는 의사들의 수입이 부족하다. 응급 의료 시스템의 전달 채널이 무너져 있어 중증질환 환자들의 치료를 보장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그녀는 이화학당을 통해 꿈과 재능을 발견했다. 그중 박에스더의 삶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닮아있다.

박에스더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10살에 이화학당에 입학한 김점동은 12살에 세례를 받으며 에스더로 개명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17세에 결혼하며 미국식 호주제에 따라 남편의 성(姓)인 박에스더가 됐다.

박에스더의 삶은 이화학당 부속병원 보구녀관의 설립과 함께 바뀌게 된다. 이화학당에서 영어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그는 로제타 홀의 통역사로 일하게 된다. 이때 구순구개열 환자가 수술을 통해 말끔하게 치료되는 것을 보고 의사로서의 소명을 발견한다. 이에 로제타 홀은 기초 의학지식을 가르쳐 보구녀관의 간호사로 양성한다.


인물: 朴瑞陽 (from. Wikipedia)

박서양(朴瑞陽, 1885년 9월 30일 ~ 1940년 12월 15일 황해도 연안 출생)은 대한제국의 외과 의사, 화학자, 교육자이자 일제강점기의 외과 의사,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봉출, 봉주리이다.

백정 박성춘(朴成春)의 아들로 태어나 의료선교사 에비슨(Oliver R. Avison, 한국이름 '어비신'(魚丕信))과 친분이 있던 아버지 박성춘을 통해 제중원의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졸업 후 오성학교, 중앙학교, 휘문학교 등에서 화학과 물리 과목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 재직했다. 1917년 만주 연길로 망명, 용정에서 구세의원을 운영하고 숭신소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35년 학교가 폐교당하자 귀국하여 의료활동을 하였다. 자는 봉출이며, 뒤에 서양으로 개명하였다.

박서양은 조선 말기 서양식 외과의사이자, 한국 최초의 전문학교(전문대학) 교수의 한 사람이었다. 일본 이름은 우에노 즈이요(植野瑞陽)이다.


[문화산책]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박서양이 선택했던 길

어느 시대나 신분 상승은 어려웠다.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그만큼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얻은 성취는 더욱 소중하고 빛난다.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과 처지를 바꾼 사람들은 드물다. 자신이 얻은 성취를 어제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 드물고 드문 사람의 하나가 박서양이다.

박서양은 1885년 9월 30일,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정과 백정의 자식은 호적조차 부여받을 수 없는 최하층 계급이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존재였다. 이름도 성도 없이 ‘봉주리’로 불리던 그에게 뒤늦게 ‘박서양’이란 이름과 호적이 허용된 것은 저절로 세상 좋아져서가 아니었다. 대대로 백정이었던 박서양의 아버지는 돈으로 자기 아들 하나의 신분을 사는 대신 갑오개혁으로 시행되던 신분차별 철폐법을 모든 백정에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운동에 앞장섰다. 백정 아버지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존재를 인정받고 이름과 호적을 얻었던 소년은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의 미국인 의사 에비슨의 조수가 되었다.

 처음부터 에비슨의 조수는 아니었다. 병원 청소와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급여도 없는 그 일을 새벽부터 밤중까지 너무도 성실히 해냈기에 그는 모두의 인정을 받았고, 에비슨은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제중원의학교 1기생으로 입학시켰다. 1908년 6월, 박서양은 동기생 여섯 명과 함께 조선인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다. 그들의 졸업식은 조선의 권력자들은 물론 한양 주재 외교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백정의 아들이 거둔 대단한 성취였고 영광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단했던 것은 박서양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그 성취와 영광을 지금의 자신이 아닌 어제의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백정의 아들이 선사한 서양의학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가면 한쪽 구석에 아늑한 역사관이 있다. 그 역사관 전시물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세브란스병원의 창립자라 할 수 있는 에비슨(Oliver Avison)의 생애와 업적이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겸 의사였던 에비슨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이었던 제중원의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1893년 한국에 왔고, 고종 황제의 주치의도 맡게 되었다. 그 후 에비슨은 미국의 자선사업가 세브란스(Louis Severance)의 지원을 받아 제중원을 세브란스병원으로 크게 재설립했다.

얼마 전 그 전시물에서 보고 놀라운 감동을 받은 내용이 있었는데, 에비슨이 아끼며 키웠던 제자 박서양의 이야기이다. 그의 아버지는 천민 중에도 가장 경멸당하는 백정이었는데, 장티푸스로 사경을 헤매던 중 우연한 인연으로 소개받은 에비슨 선생에게 치료받고 완쾌된 후 서양의학과 기독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재능 있는 자기 아들에게 서양의학을 공부시켜보겠다는 꿈도 꾸었다. 그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에비슨은 1900년도에 제중원 의학교를 설립하면서 제1회 입학생으로 박서양을 받아주었다. 그 동기 중 7명만이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1908년에 서양식 의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는데, 그중에 천민 박서양이 당당히 끼었다.

박서양은 졸업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들을 길러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현지에서 학교를 세워서 한국계 동포들을 교육하고, 독립운동단체 대한국민회의 군의관으로 재직하며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만주에서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이 여의치 않자 귀국하여 황해도에서 의료활동을 하다가 1940년 해방을 못 보고 50대 중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는 SBS 드라마 ‘제중원’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박서양이 의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일부 학생들이 그의 천민 신분을 문제 삼자 “내 속에 있는 500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워라”라고 질책하며 독려했다는 일화가 있다. 전통사회에서 천시받았던 사람이 외국에서 들어온 학문을 선구적으로 배워 자신을 아껴주지도 않던 사회에 너그러운 기여를 한 것이다.



[1] '역대급 예우' 받은 최현만…퇴직금 포함 105억원 수령, <연합인포맥스>,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02283>, 2024.03.18 17:05
[2] 무슬림 유튜버 "인천에 이슬람 사원 건립"…실현 가능성은, <연합뉴스>, <https://namu.news/article/2297660>, 2024-04-17 16:51:58
[3] [하이라이트] 대학병원이 죽어야 한국 의료가 삽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종훈 교수), <Youtube>,  <https://youtu.be/L23JU4BzxPg?si=wez2E0DIb1adejNo>, 2024. 3. 18.
[4]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아이굿뉴스>,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5784>, 
2024.03.13 13:02
[5] [문화산책]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박서양이 선택했던 길, <경기신문>, <https://kgnews.co.kr/news/article.html?no=711454>, 
2022.07.28 06:00:00
[6] 백정의 아들이 선사한 서양의학,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8774#home>, 2023.11.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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