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農の原理の史的研究

특강 Historical Research on Agricultural Philosophy in Japan (農の原理の史的研究)의

채록한 내용의 요약본을 블로그 게시글로 작성해봅니다.


Historical Research on Agricultural Philosophy in Japan (農の原理の史的研究)

藤原辰史、교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일자 | 2023.05.11 (목)

시간 | 15:00 ~ 18:00

언어 | 일본어(순차통역)

Historical Research on Agricultural Philosophy in Japan

농업사 환경사 분야의 후지와라하시 선생 토론할 내용입니다. 일본 교토대학교, 인간환경 연구과로서 농업기술사, 독일현대사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였다. 챕터의 세계사, 등 많은 저서들을 출간. 산토리 하계상을 수상. 2021년도에 출간하신, 농업원리의 사적연구라는 책에 기초를 하여 발표 예정입니다. 여러 지성사적연구 흥미로운 저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Catch phrase : 농업이 번창해서 농업이 망한다.


채록:

토론회에서 이야기될 주제는 Modern history of food and agriculture입니다. 

발표자인 藤原辰史는 근현대사의 농업, 일본의 트랙터의 세계사, 먹거리와 농업 관련 근현대사, 쌀의 품종개량, 트랙터, 나치스의 구어 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특히, 벼의 대동아공영원, 대만에서의 품종개량 & 한국에서의 품종개량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이에대해선 한국의 전북대 김태호 교수가 통일벼 연구하면서 연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농업이 어떤 역할이 되어있는가?

농업에 의해 자연환경 파괴 등, 기후변동을 극복 위해 바이오농업이라는 화제가 중요한 해결책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이오육 배양 등의 소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이산화탄소의 6할의 비율은 소 축산업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통해 보이듯이, 온난화 또한 해결가능합니다. 농업이 환경의 문제라는 인식. 축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가능성이 크다. 

2번째, 환경파괴의 문제가 심각한 시대인데요, 1950년대 근처부터 지구의 여러가지 변형 즉 ‘대가속시대’라고 불리우고 지금이 그런시대입니다. 농업시대 질소비료의 양이 급격히 급상승하고 있어. 전부 급히 증가하고 있는 상태로, 환경에 대해서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업사의 맥락에서 보면 50년대 이후로 급상승 트랙터와 같은 농기구로 인한 현상으로 분석됩니다. 농업에 의한 인구증가는 결국 자연환경에 부담이 되고 이에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시대입니다.


역사에 관한 이해

또 이번 토론에서는 식민지배와 관련이 깊은, 농업의 사상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팽창주의와 식민지주의와 관련된 역사를 서술합니다. 기본적으로 농학자들의 사상이란, 반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고, 농업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차별적인 사상과 연결성을 가지고 있어, 그 이중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농본주의 사상의 1930~1940년대 역사가 파시즘과 깊은 연결을 가집니다.


Catch phrase는

지금까지의 일본의 농업자가 어떤 사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가? 농학과 공학의 차이. 농업의 공학화라는 현상에 대한 관점들은 서로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생각이 군국주의와 식민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시즘과 같은 '부'의 역사, 그 바탕위에 새로운 역사의 철학을 만들 수 있는가? 입니다.


우선 5명의 농학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Alexander Vasilievich Chayanov

알렉산더 바실리예비치 차야노프 - 일본인은 아니지만, 차야노프는 러시아 농업 경제학자로, 가족 농장에 중점을 두고 농민 경제에 대해 연구하며,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비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경영만이 농업사회 문제점의 해결책이다라고 주장한 러시아인으로서, 이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유연성을 주장했습니다.

Yokoi Tokiyoshi

요코이 토키요시 - 그는 메이지와 태쇼 시대 중요한 일본 농학자로, 농업 교육에 기여하고 도쿄 농업 대학의 첫 번째 총장으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농학의 아버지로 유명합니다.

Hashimoto Denzaemori

농학에 기반하여, 일본인의 만주이민을 주도한 학자입니다.

Sugino Tadao 

그 제자로, 마찬가지로 일본인의 만주이민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브라질 등으로 일본인의 이민을 주도했습니다.

Yoshioka Kinichi

일본에 농기계 트랙터를 보급한 농학자입니다.


Alexander Chayanov

: 그는 러시아에서 19세기~20세기초. 가족경영의 실체를 조사합니다. 농가의 인수의 변화와, 심리상태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자본주의에 대해 공동경영에 의해 자본주의 부작용을 해결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농가의 인원수의 변화와 피로에 의해 그만두는 그런 심리상태 자료간의 연결성을 지적했습니다. 자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했으며, 이론적으로 자본주의의 저항의 실마리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각지에 번역되었고, 동남아시아까지 번역되어 확산되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Familly farming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는데요. 일본-독일-동남아시아 등의 국가의 전후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하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의 집권하에서 소농주의에서 대농주의로 사상을 바꿔간다. 이런 상황을 보고, 스탈린 하에서 러시아의 농업은 모두 종말을 맞을 것임을 주장합니다. 아주 극단적 변경이 있었고, 미래 러시아에서 농업이 필요 없어져, 마치 도시사람들이 오락으로 즐기는 것이 농업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갑작스런 태도 변경의 이유는 불명확합니다. 다만, 결국 그는 1939년에 시베리아에서 스탈린에게 처형됩니다. 특이점으론 장래 러시아가 농업제국이 되서 세계정복하는 SF소설까지 작성하였는데요. 러시아 기계주의라는 기계 만능주의 비전과 소농주의 비전, 이 2가지의 극단적인 비전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Yokoi Tokiyoshi

: 농업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합쳐 농학이라는 장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같은 시대의 Chayanov의 영향을 받아, 대농경이 아닌 소농경을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방스타일의 대업이 아니라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농업을 주장했습니다. 도쿄에서 농업을 공부한 사람인데, 당시 홋카이도의 삿포로대와 도교대학 사이에서 경쟁이 있어. 삿포로대는 서방측 입장이므로 대립하였습니다.

농본주의, 농업만이 나라의 중심이라는 논객입니다. 도교에서 농학의 기초를 굳혔다. 농업은 공업과 달리, 여러가지 파라미터가 있어 공장과 다르고, 자연의 변화를 받기 쉬워, 그 생산의 분석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농업기계 도입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즉 기계를 수용하지말고, 근면하게 육체로만 하자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 논거는 도덕성이었습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농업자들은 체력 많고, 근육 많아, 병사로 사용하기 쉬우므로 육체노동을 하는 농업자들을 기르자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의 Chayanov를 존경하여, 소설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시계'와 '벨'로 컨트롤되는 유토피아적인 마을을 생각했습니다. 단 그는 일본의 농민을 브라질이나 만주로 이주시키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Hashimoto Denzaemori

그는 1987년생으로, Yokoi의 제자였습니다. 그도 농업과 공업은 고유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독자적인 농학이라는 학문의 필요를 주장했으며, 1920년~1923년의 베틀린 경제위기 시대에 큰 인플레로 이익을 남겨, 일본의 엔으로 독일의 방대한 책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 자료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의 농민은 아시아에 진출해서 지도적 입장을 다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일본의 농민은 비상히 근면하여, 근면한 일본의 농민은 아시아에 진출해서 아시아 이민으로 아시아민중을 지도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Hashimoto는 Chayanov를 비판했는데요. 구체적으론 근면하지 않은 러시아 농민을 비판하였습니다. 반면 일본의 농민은 다르다고 주장하며 굉장히 인종차별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Yokoi와 비슷하다고 평가됩니다. 그는 인간을 기계화하는 사상을 가져, 만주로 일본 농민을 이주시키는 중요한 사상으로 변경됩니다. 


Yoshioka Kinichi

소개하는 인물 중 유일한 맑스주의자입니다. 농업경제학을 공부해, 도쿄대학에서 맑스주의에 접촉합니다. 마르크스주의화에는 2파벌이 있어, 각각 강좌파 & 노농파입니다. 강좌파는 천황제를 무너트리고 봉건제를 무너트리고 자본주의를 무너트리자는 2단계 주장. 반면, 노농파는 일본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무언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교토 대학에서 공부 후 실망했고, 대학에 졸업 후 대학의 학문에서 나와서 재야에서 공부합니다. 그는 비상히 근면한 커뮤니스트로, 러시아에서 활약한 루이센코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구미의 유전학에 대항해서 연구한 인물로, 멘델리즘, 유전학을 공부한 인물입니다. 그는 일본에 대해 소련처럼 농업의 형태가 바꿀 뿐이다 주장합니다. 농업의 기계화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Yokoi 도 비판하였고, Hashimoto Denzaemori도, Alexandre Chayanov까지 비판했습니다.

그는 전쟁중에는 만주국의 농업기계화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였으나, 일본의 확장주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체포는 되지 않았는데, 그가 확장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1943년 정도, 역시 마르크스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가택조사를 당하고, 여러가지 조사를 당했고, 체포되어 한국에 도망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매우 이례적 사례로 확장주의에 매진하는 입장에 바탕합니다. 

전후에 그는 GHQ에 도움을 받아 공부에 매진했고,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는 의학박사로 일본의 '이타이이타이병' 등을 공부했습니다. 매우 유니크하며, 성격이 나쁜 인물로, 그가 누군가를 비판할때 인신공격까지 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트랙터의 역사에 대해서 책을 작성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대학의 학문이 농촌여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여, 일본의 농민들은 임신할때 몸의 상태를 나쁜 것을 지적하며  일본 농촌 여성들의 상태에 매우 관심을 보였습니다. 모내기라는 작업에 대해 이것을 폐지하면 좋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폐지를 위해서는 여성들의 노동은 아이들의 케어를 하거나 종자를 직접 뿌리는 것에 한정하면 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또 트랙터를 이용하면 이것이 가능하여, 공동 육아, 문화적 활동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일본식의 고유의 트랙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가 시마네현의 농가에서 개발한 것이 작은 트랙터로, 여러가지 것을 옮기고,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트랙터를 목표했습니다. 이것을 General Tracter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기계화 근대화를 생각한 인물로, 소련의 기계화를 선망했지만 일본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한적 도입으로 부분적 근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의 어머니가 농민으로, 어머니가 노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트랙터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Yoshioka는 농업과 의학을 통합한 학문을 만든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중에서 중요한게 '이타이이타이병'입니다. 1960년대에 토야마 현에서 발생한 재해로, Itai-itai 병은 그 유역의 농가의 특히 여성들이 밤이 되면 아파하기에 발견된 병입니다. 카드늄을 흘러내려 버려진 것에 의해 유도된 공해병입니다. 해당 현의 관리자들이 요시오카에 연락해서 이 이타이이타이 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때 Yoshioka는 대학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아서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는 환자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조사했고, 그래서 그 결과 그전까지 조사로는 몰랐던 것을 알아냅니다. 물고기나 강에서 사는 생물에게 농축된 카드늄이 문제다는 입장을 소명했습니다. 해당 어폐류를 주변의 사람들이 먹고있었다는 것을 밝혀냈고, 우물 때문이라는 이전의 연구와는 달리, 강의 상류에서 카드늄이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Conculusion.

그래서 5인의 농학자에게서, 지금까지의 농학자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앞으로 어떤 농학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처럼 일본의 농본주의에 바탕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농학은 서방과는 농학과는 다른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의 농학은 학문이 전쟁시대에 팽창주의와 연관되어 독자적인 생각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또 농학의 Yoshioka는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Yoshioka는 특이한 인물로 그는 스탈린니즘에 무비판적 인물이었습니다. 스탈린의 폭력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서도 긍정했습니다. 그가 만든 농학이란 단순하지 않았고, 예를들어 여성의 케어라던가 의학과 농학을 합치는 특이한 시도를 많이한 인물입니다. 그를 결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농학 사상의 탄생에 대한 기반이 될 수 있기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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