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史] 한자 공동어의 변천 (상고 ~ 중고 시대까지) [: 박원기 교수님 강의 요약]

 

[#東洋史] 한자 공동어의 변천 (상고 ~ 중고 시대까지)

#전에 언어정보연구소에서 중국학 박원기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를 일부분 간단히 요약해보았습니다


*상고중국어

주족이 은족(殷族)을 대체하였어도 언어는 은족의 언어를 계속 계승하였기 때문에 서주와 은 왕조의 언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기본적인 어순, 굴절형태와 분석적 형식의 공존이란 측면에서 이 시기는 하나의 동질적인 상고중국어.

은족(殷族)이 거주했던 주요 지역은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일대. 주 왕조는 특히 봉건제도를 시행하여 이성 또는 동성의 제후에게 땅을 하사함. 그 과정에서 은족들은 감시를 위해 뤄양(洛陽) 일대로 이주.

중국의 언어는 각 제후국 별 방언을 중심으로 발전 : 상호 간의 교제를 위한 공동어가 발달-아언(雅語)

상인과 도시가 발달하고, 음악 관련 풍습이 발달하여 자연적으로 사람 사이의 교제가 늘어남, 이로써 공동어가 발달. 전국시기에 나온 각종 제자백가 저작, 공동어인 '아언'으로 저술됨. 또 초나라의 상황 등.

공동어 확산:

- 공동어로 쓰여진 경전의 전수와 주석을 중시

- 당시의 서면 공동어의 발달을 가져옴

- 이러한 서면어의 규범화 및 경전의 전습은 공동 구어의 전파에도 영향을 줌.

그리하여 진한시기에는 통어(通語) 탄생.

팔왕의 난과 영가지란 후, 남북조시대 진행. 남조와 북조는 각각 뤄양 공동어의 변체(變體) 발달.

복잡한 어법 구조가 아니었던 것은 다민족들의 인공적 공용어에서 시작했기 때문. 이런 서면상의 공통어가 변형된 것은 수당시대부터.


*수당중국어

뤄양 중심 공동어를 숭상했기 때문에 기존의 남북변체로 갈라졌던 언어를 통일하고자 하는 작업을 진행. 
『절운』 탄생: 이는 운서로 이른바 문학언어, 독서음의 표준을 확립함. 즉 이때부터 문법 복잡화, 이민족의 언어인 한자형 공통어가 낙양 거주 중국민족의 언어로 대체됨.

(학계에선 고대어를 연결성 있게 계승했다고 보지만, 솔직히 고대 중국어는 이민족간 소통을 위한 인공적 언어였고 당연히 중국민족도 소통이 가능하게 연결되어 있던 것뿐이다. 즉, 중국인들은 고대중국어와 현대중국언어를 선형적 발전으로 인지하지만, 실제론 고대 중국인과 다른 언어로 연속적이지 않았다.예를들어 인간과 원숭이가 선형적으로 진화했는가? 실제론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한 것이고, 원숭이-인간을 진화 상의 선형적 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현대중국어-상고중국어도 선형적 진화 관계로 보는것은 올바르지 않다.)

어쨋건 기존 통설로는 상고중국어가 양한의 시기를 거쳐 변화가 발생하면서 형성된 것이 바로 중고중국어라고 본다.

이러한 중고중국어는 특히 뤄양 중심의 공동어로서 여전히 수당에서도 존숭됨 : 당왕조에선 장안 중심의 공동어를 진음(秦音)이라 칭하며 여전히 기존 뤄양 중심 공동어 및 발음을 존숭함. 

+이것도 웃긴게 농서이씨 당나라는 후계에게 '진왕'의 자리를 주는 등, 진나라에 기생한 것이 자주 확인된다. 내가 왜 기생이라고 표현하나?
왜냐면 위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낙양어는 진나라를 내부에서 멸망시킨 한족(漢族)의 언어인데 왜 "한어"가 아니라 "진어"라고 표현하는가? 그 의문에 대한 정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진나라는 중국인과 다른 이민족인데 당나라가 진나라를 계승한"척"하면 이민족들을 속이고 호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국인 놈들은 남 속이는게 본질적인 본성인듯하다.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가짜 역사서 위서(僞書)가 가장 많이 창작된 시대가 당나라 시대이다.

대표적으로 단군신화는 당나라에서 들어온 서적으로 엄연히 삼국유사에는 魏書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딴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명으로 그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그 남아있는 기록들과 인근의 다른 자료들 중에 전혀 존재하지않는 상태이며, 도대체 왜 한국의 건국신에 대한 기록이 그 책에, 그리고 다른 기록 없이 그 책에"만" 적혀있겠는가? 중국인들의 역사조작을 변호하기 위한 역겨운 변명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당나라 시대에 역사서 조작질이 매우 심각했고 단군신화도 그 일부라는 것이다. 애당초 단군의 즉위년도는 중국의 신 "도당제요"와 똑같고 그는 이씨당나라의 선조이다. 왜 당나라의 선조와 똑같은 제위년을 가진 인물이 단군일까? 한번쯤은 의심하고 고민을 좀 해보자.


잠깐 이야기가 다른쪽으로 빠졌는데, 원론으로 돌아와서 뤄양 중심 공동어는 당(唐) 왕조가 건립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어 당 중기까지도 지속되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공동어의 기초 방언이 장안으로 전환된다. 장안 중심의 북방 방언이 기초방언인 새로운 중국어(공동어에서 선형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북방한족 중국어)는 성당, 중당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특히 만당 시기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장안 중심 북방방언이 공동어로 조작되었고, 이 공동어는 당송을 거치며 네 가지 구조(처치문, 술보구조, 가능보어, 동태조사)를 전 지역 방언으로 확산시킨다. << 메이주린(梅祖麟)의 견해에 따르면 만당시대 장안 중심의 북방중국어에는 위 4가지 기본구조가 존재했다네요. 다른 시대(상고)와 다른 4가지 특징이 아니라, 만당 시기의 4가지 특징을 의미합니다 >>

: 이제 어휘나 어법 방면에서 기존 중고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동어가 등장함. 위의 네 가지는 다분히 익숙한 현대중국어의 주요 어법성분으로 당나라 시기에서야 비로소 중국인들의 "중국어 원형"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上記の内容は 2024-04-07 に作成した私のThread投稿から引用しました。著作権を徹底に守って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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