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영혼의 올바른 의의, 3명의 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
- 영혼의 올바른 의의, 3명의 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
Title: 신학 - 영혼의 올바른 의의, 3명의 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
영혼의 올바른 의의
- 3명의 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
I. 序論
II. 「인간 존재의 본질」
-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기반으로 -
III. 「인간종의 기원」
- 인간 존재의 기원과 그 목적성의 유무 판단 -
IV. 「지구에 출연한 생명의 기원」
- 우연인가, 필연인가 -
V. 「우주의 기원」
- 우주에 대한 인간의 태도 -
VI. 結論
宗教とは何か?宗教は必要なのか?라는 과제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우주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이 질문들은 인류가 역사를 거쳐 끊임없이 탐구해 온 근본적이고 심오한 주제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이 발전하고 우주의 기원, 생명의 출현, 인간 의식의 본질 등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면서 종교는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연 종교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본 레포트는 옥스퍼드의 동물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로 무신론자로 매우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철학자이자 불가지론자인 앤서니 케니, 캔터베리 대주교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릿지에서 신학과 철학을 가르친 유신론자 로완 윌리엄스라는 세 명의 학자들의 토론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와 생명,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재조명합니다. 이 논의를 통해 종교가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 - 영혼의 올바른 의의, 3명의 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
첫째 「인간 존재의 본질」
-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기반으로 -
종교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기원,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로 시작된 인간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과학적 설명이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점차 밝혀내면서 종교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종교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와 우주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며 찾은 답변이자 문화적 산물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자아성찰과 의미 추구의 길을 열어주며,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의미 추구가 종교적 신앙 없이도 현대 과학을 통해 가능하며, 점차 종교가 설명하던 많은 영역을 해명해 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인간 존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며, 물리 법칙과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 의식과 존재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케니는 불가지론적 입장에서 인간 의식의 기원과 영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유보하며, 이러한 논의가 종교의 필요성과 반드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의식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종교가 필요할까? 도킨스는 의식이 뇌의 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보며, 종교가 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지의 본질과 의식의 기원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음을 인정한다. 이에 대해 윌리엄스는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물질적 요소로 설명될 수 없는 창발적 현상이라며, 이는 신적 배경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본다. 윌리엄스의 주장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의 주장에 기반한다. 아퀴나스는 마치 '이해함'과 같이 육체와 공유하지 않는 어떤 특정한 작용이 영혼에게 속한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함-분노함-감각함과 같이 영혼과 육체에게 공통적인 작용들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감정들은 육체의 어떤 측정한 부분의 변화에 따라서 일어나는데, 이로부터 감정들이 영혼의 행위이자 육체의 행위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현상이 존재함을 인정한다면, 그 행위 결과를 만드는 영혼과 육체는 마치 배와 뱃사공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아퀴나스는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5)의 생각을 받아들여 "인격을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로 정의한다. 즉 아퀴나스는 영혼과 육체가 통일성을 지니지만, 정신 및 인격의 우위를 기반으로 영혼-육체가 결합된다는 학술적 관점을 제창한 것이다.
둘째 「인간종의 기원」
- 인간 존재의 기원과 그 목적성의 유무 판단 -
인간의 기원은 종교와 과학의 오랜 논쟁 주제 중 하나이다. 종교는 인간의 존재를 신의 계획과 목적 속에서 설명하며, 과학은 진화론을 통해 생물학적 과정을 밝히려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이 인간의 기원을 명확히 설명한다고 주장하며, 인간 존재와 언어, 자의식 등도 점진적 변화의 결과로 본다. 그는 인간의 출현을 특정 시점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모든 변화는 연속적이고 누적적인 진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도킨스는 인간의 결함과 비극도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인 산물이라며, 이런 현상들이야말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본다. 그는 "회귀후두신경"과 같은 생물학적 비효율성을 예로 든다. 회귀후두신경(Recurrent laryngeal nerve)이란 혈액이 후두까지만 가는 게 아니라 굳이 가슴까지 내려왔다가 동맥 하나를 감고 다시 후두로 올라가는 비효율적 구조를 가진 기관이다. 기린의 경우 5m나 돌아가므로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진화적으로는 어류 조상들의 경우(특히 물고기)에는 목이 없으므로 이게 가장 효율적인 구조였을 것이다. 즉, 도킨스의 주장은 인간은 목적성 없이 자연법칙에 의해 유도된 순전한 우연의 결과물이라는 의미이다. 도킨스의 사상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주장과 비슷한 면이 있다. 사르트르의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이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일단 태어난 인간은, 존재하게 되고 목적을 찾는다. 즉 실존이 목적에 앞선다는 의미이다.
앤서니 케니는 불가지론적 관점에서, 진화론이 인간의 생물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의식이나 언어와 같은 고차원적 인간 능력의 기원에 대해서는 과학 이상의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진화론적 설명에 수긍하면서도, "말을 처음 사용한 인간은 누구와 대화했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인간의 사회적, 언어적 발달을 단순히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으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다른 사례로 "수를 처음 사용한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교회의 주장에 따르면, 해의 지름은 864000마일, 지구 지름은 7920마일, 달의 반지름은 1080마일이다. 여기에 하루는 60×60×24=86400초이고, 태양계의 주기는 72년×360도=25920년이고, 달의 주기는 2160마일×12개월=25920이다. 이런 우연은 수를 인식하는 사고 자체가 우주를 보고 만든 누군가의 사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들어, 고대부터 동양과 서양은 12궁도(En: The 12 Houses of Astrology / Zh: 黃道十二宮 / Jp: 黄道十二星座)와 十二支로 표현하는 1년에 1회 순행을 하는 12개의 별자리가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60진법을 사용한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춘분(春分)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때로 해당 개념도 12궁도에서 유래한다. 춘분은 태양의 별자리에서의 움직임과 황도 12궁의 기준점이 되는 시기이다. 양력으로는 3월 20일 내지 3월 21일경에 해당하여 3월(March)의 별자리가 무엇인지가 고대인들에게는 중요했다.
Nowruz( 페르시아어 : نوروز [noːˈɾuːz] )는 전 세계 다양한 민족이 축하하는 이란 또는 페르시아의 새해이다. 그것은 태양력(즉, 그레고리력)으로 3월 21일경에 이란의 달력을 기반으로 하는 축제이다. Nowruz의 날은 조로아스터교에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이란 민족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란은 다시 페르시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유대인들의 유월절(Passover)이 이에 연관된 전통도 여기서 유래한다.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기독교인들이 학대를 받을 당시 춘분점의 위치는 양자리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날 무렵 춘분점의 위치는 물고기자리로 바뀌었다. 그런 이유로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시대를 '물고기자리의 시대'로 불렀고, 물고기 모양의 암호로 서로에게 연락을 취했다. 예를들어, 『누가복음』 22장 10절 ~ 13절 :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때문에 이야기 속의 ‘물 한 동이’는 물병자리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도 천문에 대한 사상은 존재해왔다. 동양에서는 목성을 세성(歲星)이라고 불렀는데, 목성의 공전궤도를 12등분하여 놓고, 목성의 위치에 따라 해[年]의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이를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이라 하였다. 심지어 『魏志』東夷伝의 기록, 『魏志』東夷伝・濊に「曉候星宿,豫知年歳豐約。」를 통해 3월의 맞은편인 매 10월에 축제를 한반도에 살던 민족들이 벌이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족(부여)는 상나라의 역법을 사용했는데, 같은 민족은 아니지만, 매우 고대부터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인류가 천문학과 수학에 영향을 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먼 과거의 누군가는 우주를 보고 수를 생각해냈고, 현대 모든 사람의 인지구조는 어떤 발명가에게서 계승받은 것이다. 인간의 기원을 단순한 생물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성을 느낀다.
로완 윌리엄스는 인간의 기원을 단순히 생물학적 진화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본다. 그는 인간이 "신의 형상"을 갖게 된 순간이 중요하며, 자의식과 신에 대한 인식이 인간을 구분짓는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인간이 "신의 형상"이 되었다는 표현은 바로 니체의 주장에서 기원한다. 흔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 우리는 위베멘쉬가 살기를 원한다"라는 문구로 유명하여 무신론자로 오해되고는 한다. 그러나 니체는 신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본래 의도한 "신은 죽었다"는 표현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는 과정에서 그 주도자와 인간들이 찬동하여 죽임 당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신과 인간의 분리 그리고 예수의 삶의 고결함인 신성에 관심을 가지자는 주장을 뜻한다. 니체는 인간 내부의 신성에 대한 격려와 영감을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윌리엄스는 신을 긍정하며 인간의 비극적 결함이나 불행조차도 신의 전지적 설계라기보다는, 창조된 우주가 지닌 자연적 과정의 일부로 본다. 그는 신이 모든 세부를 통제하지 않으며, 인간의 고통이 신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탐구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도킨스는 진화론이 충분히 인간 존재를 설명한다고 보며, 종교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윌리엄스는 인간의 자의식과 신에 대한 인식을 통해 종교가 인간 기원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본다.
셋째 「지구에 출연한 생명의 기원」
- 우연인가, 필연인가 -
생명의 기원은 인간의 궁극적 질문 중 하나로,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거나 협력하는 대표적 주제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의 기원을 자연 선택 이전의 자가 복제 가능한 분자의 출현으로 설명한다. 그는 생명이 출현한 확률이 극히 낮을지라도, 우주의 행성 수가 매우 많아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를 언급한다. 인류원리란 "우리가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생명이 출현할 확률이 낮더라도 우리는 그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는 생명의 기원을 초자연적 사건으로 돌리기보다, 현재의 과학적 미스터리로 남겨두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케니는 생명의 기원을 확률적 사건으로 설명하는 도킨스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인류원리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논의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그는 저격수 비유를 든다. 예를들어, 10명의 저격수가 한 사형수를 두고 총을 쏘는 데, 모두 빗나간다면, 그때 사형수가 "총알은 모두 빗나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아있으니까요!"라는 발언했다고 하자. 그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사건의 인식론적 가능성이 형의상학적 필연이란 뜻은 아니므로 틀리다고 주장한다는 예시이다. 즉, 단순히 "우리가 살아 있으니 생명이 발생했다"는 설명이 인과적 틀 내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윌리엄스는 생명의 기원을 신적 설계와 연결 지으며, 우주는 단순히 물리적 과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보를 생성하는 체계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주가 필연적으로 정보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 신적 배경을 암시한다고 본다. 윌리엄스는 생명의 기원과 같은 심오한 질문은 단순한 확률적 사건으로 축소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적 신념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넷째 「우주의 기원」
- 우주에 대한 인간의 태도 -
우주의 기원은 철학, 과학, 종교의 교차점에 위치한 심오한 주제다. 과학은 빅뱅 이론과 다중우주 가설 등을 통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하며, 종교는 이를 초월적 존재와 연결 짓는다.
리처드 도킨스는 우주의 기원을 신적 존재로 설명하는 대신, 과학적 탐구를 통해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그는 빅뱅으로부터의 우주 탄생이 "무로부터의 아름다운 발생"으로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주가 전지적 존재에게 조정되었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이를 다중우주 가설로 설명한다. 다중우주 가설은 수많은 우주 중 하나로서 현재의 우주가 탄생했다는 이론으로, 이는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를 확장하는 개념이다. 그는 신의 존재를 가정하는 대신, 자연적 설명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강조한다. 도킨스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종교가 불필요하며, 과학적 탐구가 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앤서니 케니는 우주의 기원을 다중우주 이론이나 신적 존재로 설명하는 것 모두 형이상학적 가설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다중우주도 신과 마찬가지로 관찰이나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개념임을 들어, 과학 수업에서 다중우주를 언급하는 것이 신을 언급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결국 과학적 해석에 대해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려 시도하는 것 자체가 객관성과는 떨어진 해석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 도킨스는 우주의 정결한 원리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과학의 권위를 주장하려 하였을까?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의 『미학』(1750) 에서 최초로 주장되어, 칸트의 『판단력비판』(1790)에서 집성되었다. 칸트에 따르면, 미의 개념이 오성(悟性)의 영역에서 이성(理性)의 영역으로 적용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즉, 어떤 대상이 단적으로 크거나 단적으로 위대한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질 때, 오성을 초월해 한정된 것 너머의 무한정의 것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이성에 의한 무한의 이념적 현시를 통해 인간은 숭고함을 경험하고,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더라도 우주에 비하면 점에 불과한 지구에 사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거대한 우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열광은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신론자의 우주의 기원에 대한 관점은 어떠할까? 신학자 윌리엄스는 종교가 우주의 목적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본다. 로완 윌리엄스는 우주의 기원을 신적 존재와 연결 지으며, 우주가 단순한 물리적 현상 이상의 목적과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주를 "아름다움과 사랑이 어우러진 목적 있는 체계"로 묘사하며, 과학적 설명이 이러한 신적 배경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윌리엄스는 창세기와 같은 종교적 서사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창세기가 과학적 진리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영적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서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VI. 결론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생겨난 심오하고 보편적인 문화적 현상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인간의 도덕적 지침을 제공하고 삶의 목적을 탐구하기 위한 틀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과학이 진보하고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 인간의 의식에 관한 해명이 진행되면서 종교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은 과학이 인간의 존재와 우주의 구조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종교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한편 로완 윌리엄스와 같은 신학자들은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와 생명의 목적성,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의를 이해하는 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앤서니 케니는 이들 양극단 사이에 서서 종교 과학 철학이 각자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결론적으로 종교가 현대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다양한 시각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사실을 밝혀나가는 한편 종교는 그 배후에 있는 목적이나 의의를 찾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종교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에도 자기성찰과 의미탐구를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에 의존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그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는 한 종교는 계속 의의를 가질 것이다.
【참고자료】
••••••••••••••••• 【Youtube】 •••••••••••••••••
Dialogue with Richard Dawkins, Rowan Williams and Anthony Kenny, <Youtube>, 2012-02-29, <https://youtu.be/bow4nnh1Wv0?si=ePN5MC284vBcbGKO>
… 리처드 도킨스, 앤서니 케니, 로완 윌리엄스 “인간 존재의 본질과 궁극적인 원인”, 무신론, 불가지론, 유신론자의 대화(2012년)
••••••••••••••••• 【資料】 •••••••••••••••••
The Ancient Near East: An Anthology of Texts and Pictures
James 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3rd edition with Supplem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8.
『니체전집 KGW VI 3, 76. 한글판 106』
박승찬, 「인격에 대해 영혼-육체의 통일성이 지니는 의미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철학사상: 2010-02 35:63-105』.
박승찬, 「인격개념의 근원에 대한 탐구 ᅳ 그리스도교 신학과 보에티우스의 정의를 중심으로」, 『인간연구』, 2007.
古代人の星座と天文学, <Blogspot>, 2023-05-29, <https://decentpark-into-thevencera.blogspot.com/2023/05/blog-post_29.html>.
해와 달, 지구는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2014-01-21,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21719#share>.
니체(Nietzsche)의 위버멘쉬 정당화, 인간 내부의 존재하는 신성에 대해서, <https://decentpark-into-thevencera.blogspot.com/2022/03/nietzsche.html>.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능조건은 무엇인가 - 예술, 죽음, 노동을 중심으로 - <https://decentpark-into-thevencera.blogspot.com/2021/12/blog-post_32.html>.
영혼과 육체의 합일성과 영혼의 우위 -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을 중심으로 -, <https://decentpark-into-thevencera.blogspot.com/2021/11/blog-post_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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