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亜日報、1936年5月3日】に投稿された金瑢俊の「絵画に表された郷土色の吟味」を読んで...

 Course Title: 史学特講B(4)       

 Instructor: 田代 裕一朗

 Academic Year: 2024 

金瑢俊の「絵画に表された郷土色の吟味」を読んで...




1936년 간행된 한자와 한글 표기 섞인 신문기사를 현대한국어로 최대한 번역했습니다. (후반부는 번역이 다소 뭉개져 있습니다)

金瑢俊の「絵画に表された郷土色の吟味」(회화로 나타내는 향토색의 금미)
일단의 예술에서 보다 특히 회화에 있어서 지나간 수년을 두고 향토색이란 어떤 것이냐는 의문을 막연하나마 품고 있는 분이 화가이외에도 많이 있었다. 
향토색이란 이러한 것이다하고 정의하다시피 한분도 몇사람 있었지만, 그러나 이 의문은 유한무한한 가운데서 구체적 결론을 짓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 중에서 그 논의으로서 나타난 것은 별로히 문제 삼아볼만한 것이 없고 실제상작품으로 향토색을 구현하려고 애를 써본 것을 2,3들 추어보면 3,4년전 고 김포태군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여자상과 재작년에 김중현씨가 협의전에 출품한 나물캐는 처녀라 출제한 2개의 작품이 가장 현저하게 조선고유의 맛을 내여보려고 한 의도가 보이는 작품이었다. 김포태씨의 작품은 지금 확실한 역의는 없으나 분홍 저고리에 연두빛 치마를 입은 귀인가 승기자에 걸어낮고 그 앞에는 책미가 있고 책미 위에는 개나리 꽃이 가득핀 복숭아 꽃이 든 한 꽃을 화분에 꽂아두고 배경은 흑에 가까운 색을 발라서 이 갖가지 원색이 더욱 날카롭게 빛나도록 강재한 것이었다. 
특색을 자조햇고 재능있는 필법을 보여주는 씨의 작품으로서 이것만은 특선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그러나 특선에 못들엇기 때문에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을 본사람으로 맨 먼저 느껴지는 것은 작품이 반드시 어떠한 의도하세어 필심하엿다는 점이 보이고 그 필심한 내용을 다시 분석하여보면 이 작가는 '로칼 랄라'를 포정하려고 애를 썼다고 단언을 내릴수 있었다. 씨는 무엇보다도 조선사람의 일반적인 자호색이 원색에 가까운 물연한 홍, 록, 황, 다홍 등의 색이란 것을 알았고 이러한 원시적인 색조가 조선인본래의 민족적인 색채로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야 색채상으로 조선인적인 리듬을 찾어내는것이 향토색의 최선한 표현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유달리 고은 파란 물과 항상 건조해야 하는듯한 조선의 땅이 누르게 보이기때문에 이두개의 대색이 부지중에 자연에뿐 아니라 의복에까지(조선여자는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공식과 같이 입는 습관이 있다) 옮아오게 되고 모든 가구십물에 번하는 색까지고 명조하고 물필한 원시색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김씨는 한동안 떠들던 칭하길 조선적인 회화전에 느낀 바 있었던지 고인이 된 씨를 손잡고 물어볼 수는 없으나 작품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반드시 그러한 생각으로서 시험해 본것이리라고 추측된다. 
다음은 김중현씨의 나물 캐는 소녀란 문의 작품인데 이 작품은 회제부터 조선의 공기를 감촉케하려는 게획이 보이는 회면은 그야말로 아리랑고개를 현상케할만한 고개넘어 좁다란길역에 처녀가 나물바구니를 들고 있는 장면인데 색채는 약간 애매한 편의 그림이었다. 
이러한 취지로 그린 그림이 비단 김씨에 한한 배 아니로되 씨의 그림과 그 실제가 주는 여러가지 인상이 직관적으로 씨의 계획한 바를 알수있었고 또한 그 계획이 관중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것 까지도 충분히 보이고 있었다. 다시말하면 김포태씨가 색조상으로 조선을 대표하려함에 대하여 씨는 취재상으로 조선을 대표하려는 의도이었다. 
취재로서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려는 방식은 두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김중현씨의 작품과 같이 그 '모티브'를 퍽 문학적인 점에 집중하여 취재함이오 다른 하나는 문학적 내용을 갖가지 않은 직접설명적인 취재방식이니 예를 들면, 조선을 배경삼은 풍경, 조선의 인물, 조선의 모든 물건 등을 의식적으로 재료로 삼는 그림일것이다. 
그러면 이 두작가의 노력을 참고하여 그것을 동기로 하여 표현상으로 나타나는 향토정조가 어느 정도까지 성공하였는지 또는 향토정조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 것인지가 하는 것을 즉문금미하여 보기로 한다.
이상의 예두에 의하여 김포태씨의 조선정조의 설명은 취재를 긍정하는 동시에 회화적으로는 특수한 색채를 사용하여야 할 것을 암시하여 고 김중현씨의 견해는 조선에 소재한 대소의 전설이나 혹은 풍속을 가장 잘 요리할 화가는 조선 사람이라한 전도사와 같은 곳에 집점을 두고 있다. 제3의 것은 곳 조선사람 조선물건 조선풍경을 그린 작품은 소선정조가 흐르는 그림이라 할만큼 조선재료 조선정조식의 것으로 이것은 이론상으로의 모순을 벌서발견할 수 있으니 하필 조선사람이 아닌 어느나라 사람 일지라도 이런 취재로서 그리는 작품이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미술에 이해없는 일반 사람들이 흔히 외국의 인물이나 풍속을 그리는 이를 곳 외국화한 인물으로 취급하는 동시에 조선의 인정풍속을 그린 작품만이 오직 조선심을 잘 포제한 작품이라고 오해하는 수가 없마든지 있는 것은 흔히 유감이거니와 흔치않은 지식층의 인사들까지도 왜 조선을 취재하지 않으냐 하는 딱한 소리들을 하는 것은 듣기에 답답한 일이다. 
첫째 색채로의 민족성을 나타낸다는데 대하여 나느 이렇게 생각한다. 
가령 침착한 성질의 사람은 침착한 어두운 색조의 그림을 그리고 괘활한 성질의 사람은 명조한 색조의 그림을 그린다. 색조는 사람의 개성을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이니 물론 상이한 민족에서 보더라도 민족적으로 상이한 색조가 나타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상이하나는 것은 개인의 환경에 달려있거니와 분별키 고난한 정도의 것이요 특수한 환경 가령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 일본민족이 특별히 특별히 보라빛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예외하고는 이 민족의 색은 A요 저 민족의 색은 B라고 구정할 만큼 확호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도 민족적으로 보아 그 색채의 표현하는 정도가 만연하게 달리 나타나는 점은 문화정도의 상이로 고함이 더많을 것이다. 대체로 보아 문화가 진보된 민족은 암색에 류하는 복잡한 간색을 쓰고 문화정도의 저성한 민족은 단순한 원시색을 쓰기를 좋아한다. 근래 도회지 사람들이 차차 색채관념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는 것을 보든지 어린아해들이 흔히 단조한 색깔을 좋아하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이러한 색채가 조선의 색이요 이러이러한 색조가 그린 그림은 조선사람의 그림이라 할 만큼 조선사람이 아니면 나타내지 못할 색채는 아마 없을 듯하다. 색채는 개성의 상이로 각각상이하게 나타날 것이오 결코 민족에 의하여 공통된 지호색은 없을 것이다. 그 다음은 회화의 여사적기술로서 한 민족의 민족적 성격을 대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작가 상상을 관지할 수 있을지언정 민족 전체의 성격을 나타내기는 도저히 고난할 것이다. 가령 김중현씨가 아리랑고개를 그리고 조선의 처녀가 나물 바구니를 든 것을 그렸다고 그 작품은 반드시 조선사람이 아니면 그맂 못할 그러한 작품은 못된다. 그러한 여사내용을 문제로한 그림은 서양 사람도 그릴 수 있을 것이오 중국 사람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조선인의 예술이 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에 직면할 떄마다 작가란 사회사건에 극히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조선을 문재로 한 그림을 안 그리느냐, 칭하기를 지식층의 사람들까지 한동안 이렇게 외치는 바람에 서가들은 어리둥절 했다. 
회화가 그 순수성을 보존할 수록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그럴수록 회화내용문제는 더 등한시되는 것이다. 전도회가의 밀레같은 사람은 선, 색, 지방 보담도그보다도 먼저 앞서는 문제는 전도의 상상 대지의 교훈 종교의 세계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알리려 했다. 그러나 밀레는 양만주의시기의 사람일 뿐 아니라그는 화가라 함보다는 더 위대한 전도의 사상가라 함이 차라리 가능할 것이다. 같은 19세기의 미담이지만 휘슬러 같은 사람은 끝까지 회화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때문에 '어머니 소상'을 일부러 '흑과 백의 제조'하하여 회화는 색채와 선의 세계이외에 는 아무것도 없다하는 주장을 하였다.
근자에 '포풀라잇는 경향', 정물, 과체, 풍경, 작품제1등 이렇게 회화의 제재내용을 부인하는 회제를 붙이는 경향은 역시 회화이 순수성을 고집하려는 때문인가 싶다.
회화에 대한 관심들이 저성한 인사들이 흔히 "이 그림은 어떻게 어째서 좋으냐", "이 글미은 표정이 그럴듯한 걸" 운운하는 것은 회화란 것이 순전히 색채와 선의 완전한 조화의 세계로서 교양있는 직감력을 이용하여 관상하는 예술임을 모르고 해석적으로 그림의 내용을 설명해주기를 기다리는 견해밖에 못된다. 보다더 직감적인 예술은 보다 더 순수적인 것은 음악으로 보더라도 알 것이다. 
요컨데 우리가 어는 정도의 관찰안을 가지고 있는것인가 함이 문제될 것이고 작품자체가 민중을 향하여 호칭할 필요는 조금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조선 뿐만아니라 거의 동양에서라 할 만큼 넓은 국면의 사람들이 동양주의의 복구를 빈히 물의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러한 경향은 진실로 있음직한 일이오 있어 당연한 일로 생각하기는 하오나 그 중에는 간혹 인지착오의 공양주의사상을 가지는 분이 있어서 덮고 높고 옛 사람의 필법 옛사람의 태도를 그대로 모방함으로서 동양에의 복귀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 
서양의 선체를 받고 서양적 교양에서 자라다 싶이한 현대의 우리들이 무지판하게 동양에의 복귀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또한 무비판하게 서양적교양을 편승한는 것도 불가한 일이다. 소개도를 배우고 회화를 본뜨고 오원을 본받는 것이 수학으로 좋은지 모르나 벌써 시대가 다르고 문물이 다른 현대에 있어 과거의 필법을 그대로 고집한다는 것은 더한 실수일 것이다. 나는 결론에 들어서 조선의 공기를 실은 조선의 성격을 갖춘 누가 보든지 저건 조선인의 그림이군 할만큼 조선 사람의 향토미가 나는 회화란 결코 알록달록한 환유한 색채의 나열로서 되는 것도 아니오. 조선의 어떠한 물건을 취급하여 표현함으로서 되는 것도 아니오. 그러면 조선심은 어디서 찾느냐. 조선의 공기를 감촉케할 조선의 정결을 느끼게할 가장 좋은 표현방식은 무엇이겠는가? 미술사학가인 柳宗悦씨는 말하길, 조선은 지리상으로 보든지 역사상으로 보든지 그 민족의 비교발달사상으로 보든지 조선민족은 필두필미 애조를 기조로한 예술의 국민이라고. 그는 이 애조의 가추가추를 신라나 고려나 이씨 조선 도자기에서 또는 도자기에 그려진 곡선에서 건축에서 음율에서 갖추어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서 까지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이 애조는 선심의 뿌리깊은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조선사람의 과거급현재에 있는 예술작품을 볼때 결코 애조뿐만이 아니라 본다. 결염한 맛 그러고 조선인의 예술에는 무엇보다 결염한 맛이 숨어있다. 

土色」にまつわる問題意識

1.はじめに

 記事の冒頭では、「ここ数年、特に絵画の分野で『郷土色』とは何なのかという問いが漠然と持ち上がってきた」と述べられます。はっきりした結論を見いだす前に議論が消えてしまったともいい、当時の美術界で「朝鮮固有の味わい」や「民族的雰囲気」をどう描くかが大きな問題だったようです。その例として、故 金鍾泰 と 金重鉉 の二人が取り上げられています。「3,4年前、故 金鍾泰 君が朝鮮美術展覧会に出品した女性像と、一昨年に金重鉉 氏が協議展に出品した ‘ナムルを摘む娘’ の2点が、もっとも顕著に朝鮮固有の趣を出そうとする意図が表れていた。」いずれも「郷土色」を意識した作品であるところが注目されました。

2.色彩で郷土色を表そうとした 金鍾泰

 記事によると、故 金鍾泰 が描いた女性像は、ピンク色のチョゴリに淡い緑色のチマを合わせ、背景を黒に近い暗い色で塗って、前景の鮮やかな原色を際立たせるようにしたものだといいます。作中には桃やレンギョウの花らしきものも配置し、全体に「朝鮮特有の色合い」を強調しようとした意図がうかがえる、と記事は述べます。

 当時の人々は朝鮮の衣服や家具などに「原色に近い紅・緑・黄・濃いピンクなどが多用される」という認識を持っており、それらが民族的な色彩感覚の表れではないかという見方がありました。しかし同時に、このように「特定の色彩を用いれば民族性が表現できる」とは一概に言えな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疑問も呈されています。たとえば記事中では、「これこれの色が朝鮮の色であり、これこれの色調を使った絵が朝鮮人の絵だ、とは断定できない。色彩というものは個人の環境や性格、あるいは文化の程度などによって変化する。」という見解が示されています。

3.題材で郷土色を示そうとした 金重鉉

 もう一方で、金重鉉 が出品した『ナムルを摘む娘』は、いわゆる「アリラン峠」を思い起こさせる風景に朝鮮の娘を配し、ナムルの籠を持たせるなど、明らかに朝鮮の民俗的な題材を中心にすえた作品でした。しかし記事は、そうした題材選びだけでは「必ずしも朝鮮人にしか描けないものにならない」と指摘しています。たとえ朝鮮の風景を描いたとしても、外国の画家が描けば類似の作品を作ることは可能であり、題材の選択だけで「民族の情調」は自動的には生まれない、というのです。

4.絵画の純粋性と民族性表現との関係

 記事には、当時のヨーロッパ絵画にも触れた記述があります。たとえばミレー(Millet)やホイッスラー(Whistler)といった画家の名を挙げて、社会性・文学性の強い作品と、純粋に色彩や線の調和を追究した作品との対比が語られます。これは、絵画が「思想や伝道の手段」として機能するのか、それとも「色彩と線の世界」で完結する純粋芸術なのかという問題にかかわるものです。記事によれば、「郷土色」を追究する行為は後者よりも前者に近く、内容重視の姿勢と結びつきやすいように見えます。とはいえ、その両者の兼ね合いが難しいということが論じられています。

5.「朝鮮の哀調」と「潔廉な味わい」

 記事の後半では、柳宗悦(柳宗悦)の言葉を引用しつつ、「朝鮮には哀調(哀調)がある」と紹介されます。しかし筆者自身は「朝鮮芸術には哀調ばかりではなく、潔廉(결염)という特有の味わいが潜んでいる」と述べます。これは、ただ悲しみだけが基調なのではなく、澄んだ簡潔さや素朴さが朝鮮の芸術作品に特徴的にあらわれているという考え方です。単に原色を使えば郷土色が出るわけでも、民俗的題材をとれば朝鮮の情緒が自動的ににじみ出るわけでもない。むしろ、作家の内面の根底から、そうした「哀調」と「潔廉」が自然ににじみ出るかどうかが重要だ、と記事は指摘しています。

6.まとめ

記事の結論として、「郷土色」とは一朝一夕に得られるものではなく、当人が生きている文化環境や精神的背景、そして作家としての意識が作品に深く融合したときに現れるということが示唆されます。背景に朝鮮の風景を描き、朝鮮女性の服装を描くからといって、それだけで「朝鮮固有の情調」を具現できるわけではないという厳しい視点も含まれています。また、当時「東洋回帰」を唱える風潮があった一方で、それを安易に模倣するだけの態度では「真正の朝鮮の味わい」は出てこない、という警鐘も見られます。

つまり、この新聞記事が伝えようとしているのは、「郷土色」とは作家個人の思想や表現が深く作用しなければ本質的に現れないという点です。単に絵の中に朝鮮服や朝鮮の色彩を配置したり、民俗的な場面を描いたりするだけでは不十分だという見解は、現代の私たちが「地域の個性」を表現しようとする際にも通じる示唆かもしれません。


++ 《參考文獻》

金英那, 『韓国近代美術の百年』, (三玄社, 2011年)

『韓国近代美術史―甲午改革から 1950年代まで』, (東京大学出版会, 2019 年)

金惠信, 『韓国近代美術研究 : 植民地期「朝鮮美術展覧会」にみる異文化支配と文化表象』, (ブリュッケ, 2005).

古川美佳, 『韓国の民衆美術 (ミンジュン・アート) : 抵抗の美学と思想』, (岩波書店, 2018).

文凡綱(著) ; 白凛(訳), 『平壌美術 (ピョンヤン・アート) : 朝鮮画の正体』, (青土社 , 2021).

白凛, 『在日朝鮮人美術史 1945-1962 : 美術家たちの表現活動の記録』, (明石書店,2021).

『官展にみる近代美術 : 東京・ソウル・台北・長春』, (福岡アジア美術館・府中市美術館 ・兵庫県立美術館, 2014).

『日韓近代美術家のまなざし : 『朝鮮』で描く』, (福岡アジア美術館・岐阜県美術館・北海道立近代美術館・神奈川県立近代美術館,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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