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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March, 2022

正しい中国史書の解釈態度、中国系の裏面の目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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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しい中国史書の解釈態度 - 中国系の裏面の目的 中国の史書によると、 百済建国者の優台は漢の人で、高句麗建国者の朱蒙は高氏なので皇帝·軒轅の子孫です。 新羅は秦の後裔で、4000年前の中国古代皇帝·小昊金天氏の後裔です。 そして日本は、徐福が秦皇帝の命令で作った国家であり、同時に日本の天皇は呉の後裔です。 凶奴は周の王の子孫で、西夏は2000年前の夏の子孫です。 満州族は宋の将軍の子孫です。 ところが実際、清の遺伝子分析はハプログループCであり、高句麗と百済の祖先は同じだという非中国人の記録と一致しません。 このすべての記録に一貫性がない理由は、中国系の暗黙の目的の捏造だからです。 中国系の精神は捏造による民族の吸収であり、これは数千年間成功しました。 凶奴族、氐族、羯族、羌族、鮮卑族、契丹族、蒙古族、満州族はすべて存在したが、現在は中国に吸収され衰退しています。 古朝鮮神話に熊と虎が登場しますが、貊族のシンボルは熊だという記録があります。そして、貊族の熊は、現代の論文によると中国北京の北東部に生息していたパンダである可能性が高いです。現代の中国のシンボルもパンダです。 現在、韓国の遺伝の多数は中国北部から渡ってきており、47zを除いた南方中国系も計算から取り除くと、実は韓国の古代三国時代から存在していた遺伝は10%下です。北朝鮮の遺伝まで合算すると、比率はもっと低くなります。 現代の韓国人の苗字が大体中国系の苗字である理由は明らかです。韓国の歴史書には古代建国から中国系の名が記されていますが、どこにもそのような人物は登場しません。韓国の歴史書はドルメンの半島北西部に存在していることを強調していますが、実際ドルメンの分布は半島南西部に多数存在しています。 非中国人10人が1つの捏造を説明しても、中国人1000人が100の新たな捏造を作ります。 中国系はすべてのアジア人を5000年前の中国皇帝の子孫だと洗脳したいます。中国系はすべてのアジア人を5000年前の中国皇帝の子孫だと洗脳することを目的にします。洗脳され融合すればその内部で中華人は中国人の祖先への家族祭祀を通じて、その国で共有される歴史と異なる歴史観の教育を受けます。 中華の目的は、その国の権力奪取、国家転覆、そして中国化です。 そして、その国の内部で滅ぼし、その国の死体を吸収して栄えるのが中国系の歴史であり

중국 사서의 해석에 대한 올바른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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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서에   따르면 , 백제   건국자   우태는   한사군   사람이고 ,  고구려   건국자   주몽은   고씨이므로   황제   헌원의   자손입니다 .  신라는   진나라의   후손이며 , 4000 년전   중국   고대   황제   소호금천씨의   후예입니다 .  그리고   일본은   서복이   진시황제   명령으로   만든   국가고 ,  동시에   일본천왕은   오나라   후손입니다 . 흉노는   주나라   왕의   후손이고 ,  서하는  2000 천년   전의   하나라   후손입니다 .  만주족은   송나라   장군의   후손입니다 .  그런데   실제   청왕조의   유전자   분석은   하플로그룹  C 이며 ,  고구려와   백제의   조상은   같다는   비중국인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 이   모든   기록의   일관성이   없는   이유는   중국계의   암묵적   목적의   날조이기   때문입니다 . 중국계의   정신은   날조를   통한   민족흡수이며 ,  이것은   수천년   동안   성공해왔습니다 . 흉노족, 갈족, 저족, 강족, 선비족, 거란족, 몽고족, 만주족은 전부 존재했지만, 현재는 중국에게 흡수되거나 쇠락했습니다. 고조선   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지만 ,  맥족의   상징이   곰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  그리고   맥족의   곰은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베이징   북동부의 서식하던   팬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현대   중국의   상징도   팬더입니다 . 현재   한국의   유전자의   다수는   중국북부에서   건너왔으며 , 47z 를   제외한   남방   중국계도   계산에서   제거하면 ,  사실   남한의   고대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유전자는  10% 이하입니다 .  북조선의   유전자까지   합산한다면   비율은   더   낮아집니다 .  현대   한국인의   성씨가   대게   중국계   성씨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 

니체(Nietzsche)의 위버멘쉬 정당화, 인간 내부의 존재하는 신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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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Nietzsche)의 위버멘쉬 정당화, 인간 내부의 존재하는 신성에 대해서      - '철학자 니체의 그리스도교성과 복음' 강의를 듣고 작성하는 소감문입니다. 니체의 정체성은 간단하지 않다. 니체는 흔히 무신론자로 오해되곤 한다.  하지만, 니체는 신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인간 내부의 신성에 대한 격려와 영감으로 표현한다.  니체가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인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살기를 원한다"는 표현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과정에서 그 주도자와 인간들이 찬동하여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신과 인간의 분리를 죽이고, 예수의 삶을 의미하는 신성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짐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 예수에 대한 희망과 고백. 예수와 그리스도교를 분리해버리는 것. 인간에 내재하는 신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개개인 한명 한명에게 존재하는 신성의 발현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는 이게 바로 그리스도교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을 통해 새로운 길을 종교인들에게 제시하였다. 하지만, 니체의 위버멘쉬 주장에 대해 느끼는 나의 반발심도 존재한다. 이는 위버멘쉬가 그리스도교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비판하기 위해 창조의지 긍정을 위한 전략적 부정을 실현하는 것에서 문제가 된다. 그는 "만일 신들이 존재한다면, 나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참고 견뎌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의지가 나를 유혹하여 신과 신들에게 등을 돌리도록 했다. 만일 신들이 존재한다면, 창조할 무엇이 남아있겠는가"라고 표현한다. 이는 인간의 삶을 위한 정당화라고 합리화되지만, 삶을 위해 정당화함이 거짓을 올바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당위성이 옳음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당화 끝에 남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삶에 대한 긍정이 인간 스스로의 또 다른 망상에 따른 것이라면, 그 끝은 믿는 것만을 보는 광자들의 세계이다.  그리스도교의 죄의식은 인간을 약화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이 사실에

新羅の滅亡 -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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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漢時代の記録を見ると、扶余族は自らを「逃げてきた亡人」と話した。 記録によると、扶余のまたの名は濊族である。 また、記録によると、濊族の首都は韓半島の東海岸。 満州の東海岸の沃沮と高句麗も言語が通じていた濊族の一種。 斯盧国の建国当時、沃沮使臣が斯盧を訪問した記録。 斯盧国時代、扶余の「濊王之印」を北溟(東濊の一種)人が伝えたという記録。 百済の建国は高句麗の遺民という記録。 つまり、扶余族は先史時代に半島の東南から東の海岸を通じて移住した民族で、歴史時代になって再び南西に移住した民族だという推測が可能です。 A:朴氏は北方騎馬民族の末裔。 金氏は少昊金天氏の末裔。 B:朴赫居世の海尺之母は阿珍義先。金氏は脱解の養子。なぜAとBの説明が矛盾するのか。 なぜ崔氏が蘇伐道利の子孫だと主張するが、蘇伐道利の子孫だと主張する蘇氏が存在するのか。本当に惱窒朱日系は苗字を合併したのか。中国系許氏と半島系許氏?その他にも多くの課題がある。 古代人の歪曲の歳月から圧迫を感じます。しなければならない課題が多すぎる。 ここyoutubeのコメントです :  https://youtu.be/nfKB3514yQU この 作品 は  クリエイティブ・コモンズ 表示 - 継承 4.0 国際 ライセンス の下に提供されています。

타국에 대한 공격방식: 동족을 인질로 이용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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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타국에 대한 공격방식: 동족을 인질로 이용하는 방식 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태는  본질적으로,   마치 어떤 한 애비가 술집에서 마약하고 몸파는 딸년을   발견하고는 머리끄댕이 잡고 끌고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딸이 " 나 가만놔둬! "라고 고래 고래 쌍욕에 소리지르고, 이빨로 애비 팔을 막 깨물고 그러는 것. 그 애비에겐 딸년이 아무리 자기 팔을 아프게 문다고 해도, 이 년을 재빨리 그 술집에서 끌고 나가서 새삶을 살수 있게 해주는게 목적임. 즉, 주먹다짐으로 이 술집 조직원들 패는게 본 목적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딸년의 마음을 다시 얻는게 이 애비의 가장  큰 목적임.   지금 이게 러시아정부의 진짜 속마음이고 몽둥이로 그 술집 조직원들은 패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과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하는  이 세상 전례없는 굉장히 풀기힘든 난해한 군사작전이다. _ 한일간 관계도 실상은 이와같다.  본래 반도의 고대 삼국시대의 주민들은 대다수가 반도에서 도망치거나 하층으로 떨어진다. 억울한 점은 정정당당한 승부도 아닌, 날조를 통한 민족 융화였고, 중화 민족 특유의 거대한 인구수로 인해서  이민자가 오히려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 신라에 이민온 이민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나, 이들은 지속적으로 이민을 오고, 영토욕에 행한 정복은 오히려 국가 내부의 이민자들의 비율을 늘리기만 했을 뿐이다.  또한 중국인들은 전통의 날조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변씨가 본인들이 태양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날조하고, 이씨는 신라건국 초기부터 있던 기여자라고 날조하고, 현대 백씨는 이름만 같은 중국 백씨지만 백제 백씨라고 날조하고, 고구려 고씨는 중국 삼황오제의 후손 고씨이므로 중국 국가라고 주장한다. 중국공자학원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는 결국 대다수를 차지한 중국계들이 역사 날조를 통해서 기존 민족을 속이고 그들의 역사를 갈취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조상이 아님에도 본인들의 조상이라고 날조

現代韓国を洞視し、感じる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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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韓国を洞視し、感じること 前漢時代の記録を見ると、扶余族は自らを「逃げてきた亡人」と話した。 記録によると、扶余のまたの名は濊族である。 また、記録によると、濊族の首都は韓半島の東海岸。 満州の東海岸の沃沮と高句麗も言語が通じていた濊族の一種。 斯盧国の建国当時、沃沮使臣が斯盧を訪問した記録。 斯盧国時代、扶余の「濊王之印」を北溟(東濊の一種)人が伝えたという記録。 百済の建国は高句麗の遺民という記録。 つまり、扶余族は先史時代に半島の東南から東の海岸を通じて移住した民族で、 歴史時代になって再び南西に移住した民族だという推測が可能です。 三国時代初期から国境が接することが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互いに連絡があった記録や、高句麗が新羅を滅亡可能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しなかった記録。  最初からみんなが同じ系列の国家だったからです。 当時の人々が知っていた何かがあったはずです。 しかし、百済と高句麗は兄弟国家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復讐心で互いを破壊し、新羅は自らが中華の末裔だと洗脳して同族を裏切って以後、統一します。  結局、その終わりは中国化と新羅の滅亡。 中国が200~300年ごとに滅亡と建国を復するサイクルだが、中国化以前の半島はそうではなかった。 概ね700~900年の歴史を有しています。  中国は異民族との戦争でいつも敗れたが、最終勝者はいつも中国だった。正正堂堂とした勝負では負けたが、プロパガンダや権謀術数に富む。 同様に、中国化した高麗は古代時代の戦争能力を失い、中国式の王朝交代型の歴史に変形しています。 他の異民族は中国化後、中国の一部となるが、半島はそうではなかった。 しかし、これは内陸と半島の地政学的違いから発生した違いに過ぎないます。 そして現代韓 国は、いまだにプロパガンダの影から抜け出ていません。その歴史は 21 世紀までも 続くのでしょうか? この 作品 は  クリエイティブ・コモンズ 表示 - 継承 4.0 国際 ライセンス の下に提供されています。

현대 한국의 역사를 통시하고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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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한국의 역사를 통시하고 느낀점 전한 시대 기록을 보면 부여족은 스스로를 도망쳐온 망인이라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부여의 짧은 이름은 예족이다. 또 기록에 따르면, 예족의 수도는 한반도 동부 해안가 고구려와 옥저또한 언어가 통하던 예족의 일종이다. 사로국의 건국 당시 옥저 사신이 사로에 방문한 기록 사로국 시대 예왕지인을 북명사람이 전달했다는 기록 백제의 건국은 고구려의 유민이라는 기록. 그럼 부여인이 북방기마민족? 선사시대에 반도 남부에서 동부해안을 통해 올라온 이후, 역사시대에 남서로 이동한 민족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국경이 접해있지 않음에도 서로 연락이 통했던 기록이나, 고구려가 신라를 멸망 가능했음에도 하지않았던 기록.  애초에 모두가 같은 계열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왕족들만이 알고있던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는 형제 국가임에도 복수심에 서로를 파괴하고,  신라는 스스로가 중화의 후예라고 세뇌하며 동족 배신 이후 통일.  결국, 그 끝은 중국화와 신라의 멸망. 중국이 200~300년 마다 멸망과 건국을 반복하는 싸이클이라면, 중국화 이전의 한반도는 그렇지 않았다. 대체로 700~9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이민족과 전쟁에서 언제나 패배했지만, 최종 승자는 언제나 중국이었다. 정정당당한 승부에서는 패배했지만, 권모술수와 프로파간다를 통한 공격에 능하다. 마찬가지로 중국화한 고려는 고대시대의 전쟁능력을 잃고, 중국식의 왕조교체형 역사로 변형된다. 다른 이민족들은 중국화 이후, 중국의 일부가 되지만, 반도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내륙과 반도의 지정학적 차이에서 발생한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현대한국은 아직까지도 프로파간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그 역사는 21 세기 ,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가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 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ウクライナ·ロシア戦争に対する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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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ウクライナ·ロシア戦争に対する理解 今回発生したロシアのウクライナ侵攻について多くの議論が起きています。 これに関する資料は主に西側の資料に限られているので、従来とは違ったロシアの観点を中心とした理解をご紹介したいと思います。 当初ロシア歴史の本流は、現在のウクライナ領土で勃興したキエフ公国ですね。ウクライナの反ロシア感情が強くな理由は、ジョージア出身のスターリンのソ連時代の大飢饉のため。だからウクライナは親EUと親ロシアの派閥に分かれていましたが、今回の大統領は親EUの派閥なんですね。 ソ連解体はソ連の腐敗に対する幻滅によって自発的な解体でした。 腐敗した連邦解体後、連邦の再結成を目標にしましたが、ウクライナは微温的な態度で西欧とロシアの間で中立を維持しました。 独立後の再結成を信じたので、ロシアはウクライナにロシア人の多いドンバス地域やクリミア半島を譲渡しましたが、裏切られたと思っています。 ウクライナはソ連から独立した後、核兵器の放棄、造船所の売却、航空メーカーの売却が発生します。これはロシアの立場ではEUに操られるウクライナだという考えがあります。 2000年代までウクライナは中立を維持していましたが、その後に親ロシア派閥が権力を持ちます。しかし、ウクライナのマイダン革命により、親EU派閥が権力を持っています。 このマイダン革命で、ウクライナ民族主義者がウクライナ南部都市オデッサでロシア系住民43人を虐殺した事件も発生します。また、本来ロシア領土だったドンバス地域では、ロシア系住民にウクライナ語を強制しています。この流れが現在まで続きます。 ロシアとベラルーシ、ウクライナはすべて汎スラヴ系の国家です。 でも、ウクライナは自らをウクライナ民族、ロシアは自らをロシア民族だと考える感覚があります。 そのため、ロシアを無条件に中国と連携して考えることは難しい点があると思います。 注意: ただし、これはロシアの立場から見た文です。 from: 【ロシアのウクライナ侵略②】ウクライナはどうなるか?そして、日本は大丈夫なのか? .  Youtube .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22-05-10 . Retrieved  2022-05-06 03:04 . この 作品 は  クリエイティブ・コモンズ 表示 - 継承 4.0 国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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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이해 이번에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료는 주로 서방측 자료에 한정되어 있기에 기존과는 색다른 러시아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 이해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당초 러시아 역사의 본류는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발흥한 키에프 공국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감정이 강해진 이유는 조지아 출신의 스탈린의 소련 시대의 대기근 때문이고요.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친EU와 친러시아 파벌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번 대통령이 친EU 파벌이군요.  소련 해체는 소련의 부패에 대한 환멸로 자발적인 해체였습니다. 부패한 연방해체 이후, 연방의 재결성을 목표로 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미온적인 태도를 가진채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했죠. 독립 이후 재결성을 믿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인이 많은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양도했지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독립 이후 핵무기 포기, 조선소 매각, 항공제조사 매각이 발생했었죠. 이게 러시아 입장에서는 EU에게 조종되는 우크라이나로 생각했고요.  2000년대까지 우크라이나는 중립을 유지했지만, 이후 친러시아 파벌이 권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마이단 혁명으로 친EU파벌이 권력을 가집니다. 이 마이단 혁명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남부도시 오데사에서 러시아계 주민 43명을 학살한 사건도 발생합니다. 또 본래 러시아 영토였던 돈바스 지역에서는 러시아계 주민들에게 우크라이나어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모두 범슬라브계 국가들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우크라이나 민족, 러시아는 스스로를 러시아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감각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들 때문에 이번 침공에서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 고가 정밀무기를 우선 사용했습니다 .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는 정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