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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December, 2021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능조건은 무엇인가 - 예술, 죽음, 노동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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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인간학_기말과제 삶을 아름답고 긍정적이게 만들 수 있는 가능조건은 무엇인가  -  예술, 죽음, 노동을 중심으로 -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아니다”라고 한다. 사르트르의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이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 책임이 있다. 1)  따라서 본인은 모든 인간은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책임지기 때문에, 그 선택에 의해 결정된 자신이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美)와 예술을 중심으로 미학은 18세기 중엽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의 『미학』(1750) 출간 이후 미적경험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는 지성적 인식과 감성적 인식의 구분을 따르면서도, 이 감성적 인식을 미의 인식과 동일시한다. 아직 미에 대한 인식은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칸트의 『판단력비판』(1790) 이후 미적 경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해석해낸다. 칸트에 따르면, 미(美)를 판정하는 취미판단은 주관적이므로 논증하거나 반박이 불가능하면서도, 취미판단이 다를 때 논쟁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율배반이 발생한다. 이 이율배반은 판단의 종류에 의해 해결된다. 판단은 이미 일반화 가능한 원리가 있을 때 특수를 포섭하는  규정적 판단 과 보편이 아직 없음에도 특수를 보편으로 찾아내는  반성적 판단 이 있다. 따라서 예술은 보편적 판단이 가능한 네러티브이며, 아름다움은 미의 보편적 규칙이 이미 존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예술적 천재에 의해 예술에 규칙이 부여되어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판단되는 미가 탄생하는 것이다. 동시에 미는 객관적일 정도의 보편성은 없지만, 사람들의 타당성에 대한 요구에 응해야 한다. 때문에 취미판단은 필연적으로  공통감 의 이념을 갖출 수밖에 없되, 인식 일반을 목표로 자유롭게 유동하는 감정이다. 이 미의 개념이 오성(悟性)의 영역에서 이성(理

대중문화 비평: 한국의 웹소설 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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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웹소설 문화 - 한국 웹소설 문화에 담긴 자기 표상과 집단적 욕망 - 한국의 웹소설은 본래 인터넷소설이나 온라인소설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었으나, 2013년부터 네이버에서 ‘네이버 웹소설’이라는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비로소 ‘웹소설’이라고 불렸다. 한국의 웹소설은 1990년대 말, PC통신 문학을 시작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당대 새천년 2000년대를 맞이하는 불안정감과 기대감이 만나는 시대상 속에서 PC통신은 순문학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들의 공간이 되었다. 1)  본인도 읽어본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의 장르 소설들이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한국에서 웹소설은 본래 스낵컬쳐(snack culture) 중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빅 컬쳐(big culture)로 성장하고 있는 대중문화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웹소설 플랫폼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웹소설, 조아라, 문피아, 또 최근에는 노벨피아라는 플랫폼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웹소설 문화에서 현세대의 의식구조와 신화적 구조를 미약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다. 이는 웹소설에서 개인의 표상이 현세대의 집단적 욕망을 반영하여 대량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웹소설에 나타난 개인의 표상은, 현세대의 자기표현이다. 웹소설은 소설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중첩되는 것이다. 즉 웹소설은 ‘순수문학’처럼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300~1000자 분량의 1편에 대해서 글이 진행될 때마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작가에게 피드백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웹소설에 직접 참여하므로 웹소설은 참가집단의 내부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2) 둘째, 웹소설에서 개인의 표상은 대량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웹소설은 하나의 ‘클리셰’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 그 ‘클리셰‘가 무수히 재생산되고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소설 속 개인(주인공, 등장인물)의 표상은 많은 작품에서 재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웹소설의 독자들이 소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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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 한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자 - 욕망너머의 한국고대사를 지은 젊은역사학자모임은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소장 학자들이 주축이 돼 2015년 결성한 모임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사이비 역사학에 대해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공유했고, 이에따라 대학원 과정에 있거나 이제 막 박사학위를 취득한 젊은 연구자들이 뜻을 모아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한겨레21> 지면상에 연재한 글들을 뼈대로 삼아 만들어졌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현대사 전공자의 글을 실었는데, 이는 사이비역사학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현대사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마지막 해석에 있어서는 아쉬운 해석이 많이 보인다. 1) 이 책은 총 11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고조선과 낙랑군에 관련해서 2파트, 고구려에 관해서 1파트, 백제에 관해서 2파트, 신라에 대해 2파트,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1파트, 발해사 1파트, 전반적 한국고대사에 대해 1파트, 현대사를 통한 비판에 1파트를 할애하고 있다. 고조선과 낙랑군에 대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트는 기경량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국사학전공 조교수가 쓴 글이다. 책에 따르면, 고조선에 대해서 실체를 갖춘 형태의 가장 오래된 관련 기록은 《관자》라는 책 이다. 책의 저자 관중은 기원전 8~7세기 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책이 실제 관중의 저술이 아니라 전국시대에 제나라에 모인 여러 학자가 관중의 이름을 빌려서 만든 책으로 짐작되며, 《관자》의 저술 시기는 대략 기원적 4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책에는 ‘무늬가 있는 가죽’을 특산물로 교역하는 짧은 기록이 존재한다. 또 전한대의 저술된 《염철론》에 따르면 연이 동호를 엄습해 달아나게 하고 천리의 땅을 개척했으며, 요동을 지나서 조선을 공격했다고 한다. 또 위촉오 삼국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 위략》에서는 주나라가 쇠약해져 연나라가 스스로 왕을 칭할 당시 조선후 역시 스스

why Koreans are worrying about Chines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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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Koreans are worrying about Chinese people? I found on YouTube that Chinese people have a wrong understanding of Korea. So, I brought the comment I wrote to understand this correctly. I hope you understand pleasantly. Chinese Amateur Historian comment : Korean history is written in Chinese, so koreans need to read ancient Chinese books to find their own history Isn't your Korean name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What big tail Wolf. my reply : Don't you know why Koreans are wary of Chinese people? We've been neighbors to China for thousands of years, and we've been witnessing the history next to us. The Xiongnu(匈奴), 갈(羯), 강(羌), 저(氐), Xianbei(鮮卑), Kitan(契丹), Mongol, Manchu(滿洲) apparently existed, but now they are all absorbed or declining by China. Foreigners can only distinguish themselves by simply lumping them into Turkic, Mongolian and Tungus, but they can distinguish in detail by EastAsian who have studied history. In the Middle age, In order to absorb the Xiong

日本の日-中戦争 & 第2次世界大戦 評価

  日本の日-中戦争 & 第2次世界大戦 評価 クラウゼヴィッツの『戦争論』によると、「戦争は自国の政治的目的を他国に強要するための暴力的行為」である。 それでは日本は何を目的に中国と戦争をしたのか? その目的は外交や政治、経済を通じて解決できなかったのか? その目標は何か? 中国の成長が本当に日本を脅威だったのか? 目標は曖昧。 戦争でなくても解決可能な問題。 鮮卑、契丹、女 真、蒙古、満州族のように、中国大陸の魔性に惑わされたのか? 実状戦争は実現する前からその勝敗が決まっている。 他国に求める目的によって可能性が決まり、国の力量(外交、経済、人口)によって可能性が決まり、誰が間違いを少なくするかによって可能性が決まる。 逆 転の妙手とは、続く王朝交代によって英雄重視の文化を持った、中華文明圏の幻想。 米国の立場は、明確で適当な目的で、優越した力量を持ち、間違いを最小限に抑えて戦争した。 中国の立場は、防御という明確な目的で、広い大陸 & 外交的状況との優位をもって戦争した。 中国は日本と戦争していなければ、現在成長する第三世界の工業国家に過ぎなかったのです。 しかし、日本が戦争をして敗北し、UNの常任理事国となり、国際社会で機会を得た。中国はおそらく戦争を仕掛けてくれた日本に感謝したはずです。 私が考えるば、 戦争が始まった瞬間、その勝敗が決まっていた。日本自らクモの巣にかかったのだ。 +) In Korean: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르면, "전쟁은 자국의 정치적 목적을 타국에게 강요하기 위한 폭력적 행위"이다. 그럼 일본은 무엇을 목적으로 중국과 전쟁을 하였나? 그 목적이 외교나 정치, 경제를 통해서 해결이 불가능하였나? 불가피하다면 그 목표는 무엇인가? 중국의 성장이 정말로 일본에게 위협적이었나? 목표는 애매하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 혹시 갈 , 저 , 강 , 선비 , 거란 , 여진 , 몽골 , 만주족들처럼 중국대륙의 마성에 현혹되기라도 했는가 ? 실상 전쟁은 실현하기 전부터 그 승패가 결정되어 있다.  타국에게 강요하는 목적에 따라 가능성이 결정되며, 국가의 역량(외교나 경제, 인구)에 따라

문학 비평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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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해석하기  - ‘ 헤르만 헤세 ’ 의 소설 『 데미안 』 (1919) 은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독일  ‘ 성장소설 ' 이다 .  독일은 소위 교양  ‘ 성장소설 ’ 의 측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 ‘ 괴테 ’ 의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 (1786) 를 필두로 계속 하나의 장르로서 지속적인 맥을 잇고 있다 .  헤르만 헤세의 소설 『 데미안 』을 이해할 때는  1 차 세계대전 (1914~1918),  전통적 가치의 와해 , ' 대중 ' 의 출현이라는  3 가지 시대적 배경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 1) 당시 여러 작가는 전쟁 (1 차 세계대전 ) 에 찬성하는 글을 작성하였다 .  하지만 ,  헤세는 당시 여러 작가와는 달리 일관성 있게 전쟁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  헤세는 일관성 있게 당시 전쟁에 , " 쇼비니즘과 야만 " 에 대항해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평화와 반전을 위한 연대를 호소하며 많은 정치적 글들을 발표하였다 .  에셀보른 - 크룸비겔에 의하면 헤세는 그런데도  ' 적극적인 반전주의자들 ' 에 속하지는 않았는데 , " 왜냐하면 ,  그는 정치적 활동을 하려 하지 않았으며 어떤 정치적인 그룹에도 속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 시대는 전통적 가치가 와해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 ‘ 헤르만 브로흐 ’ 는 소설 『 몽유병자들 』 (1932) 에서 기독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가치의 통일성이 와해한  20 세기 초 유럽인들을 가리켜  " 길을 잃은 종족 (ein verlorenes Geschlecht)" 이라고 칭한다 .  소설 데미안에서 헤세가 형상화하는 당대의 사람들 역시 브로흐의 길을 잃고 헤매는  ' 몽유병자들 ' 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또한 이 시대는  ' 대중 ' 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 ‘ 오르테가

現代、簡略に要約した韓半島の歴史的構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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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代、簡略に要約した韓半島の 歴史的構造 古朝鮮が新羅系と楽浪系の共通分母であるため、古朝鮮を重視する現代の韓国人。  韓国のクッポンが古朝鮮で多様な歴史的プロパガンダをするのはこのような背景。 日本人は半島の人を朝鮮人と見做すが、実際の朝鮮人はみんな滅び、楽浪人だけが存在。 彼らが新羅に移民し、結局新羅系と楽浪系の高麗が建国される。 従って、 楽浪系は日本が半島を朝鮮と認識し続けることを望んでいるものだ。 その後、李氏朝鮮は 新羅系 + 楽浪系 + 中国移民系 で国家構成。 中国系が多数を占めることになる。 誰も事実を話せないのが現状。 そのため、中国系が日本を非難すると、新羅系が静かで 新羅系が中国を非難すると、中国系が静かになる。 だから日本と中国が見るには、韓国が中国と日本の両方にばかをする狂人に見えるのだ。 古朝鮮から続く同じ民族というプロパガンダ。  これは楽浪系が持続的に新羅系と一緒にいようとしていること。  けれど、事実を知る人々も、これがプロパガンダ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することは難しい。 その理由は、真実を知って分裂することを避けるためだ。 私もこうした事実を伝えることについて多くの悩みを感じた。 しかし、今の 状況は悪の軸、中国にとって有利な状況だと思い、このような文を書くことになった。 『三国史記』に古朝鮮の移民者たちが新羅6部を構成したと作成されているが、 私が書いた 『三國志 魏書卷30辰韓伝 批判』  「source: https://jhp3822-into-thevencera.blogspot.com/2021/11/blog-post_30.html 」 & 『三国史記 批判』 「source: https://jhp3822-into-thevencera.blogspot.com/2021/11/blog-post_29.html 」 で見たように、完全に三国史記を信じることは難しい。 私が推測するに、最初に半島に弁辰、辰韓地域に辰族が住み、彼らが6村を構成しているもの。 『三國志 魏書卷30辰韓伝』 記された辰韓人が自らを中国の秦韓人だと言ったのはわ、 儒理尼師今時代の移民を意味するものであること。 そしてこの移民が新羅に伝えた伝説がまさに崔氏楽浪国の伝説だ。 楽浪人が移住する前に新羅6部に6つの姓氏が現れるが

韓国クッポンの正体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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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東夷朝鮮の伝統を今まで守り続けて来た日本は、 天皇の始 祖である神武天皇が金首露王の子孫であったという事実を明 らかにすべきである。 それこそが歴史を立て直す第一歩であ り、 先祖と子孫に対する礼儀であり道理でもある。 by.  韓国のクッポン あのような文を書く人たちの目的は? まず、理解のため、この文を読んでください 👉 「 https://decentpark-into-thevencera.blogspot.com/2021/11/blog-post_29.html 」 金氏の中に中国系がいるけど、今のところ誰も本人を中国系だと主張していないよ。 但し、韓国人だけが知っている事実だが、普通の金氏なら金閼智までを始祖とするか、金首露を始祖とするのが普通である。 ところが、中国系は祭祀を行う際、金日磾を祖先で行う祭祀もある。  彼らは金日磾の先祖である”少昊金天氏”まで祭祀を行う。 彼らは、金日磾系が半島に移住してきて、金首露系と金閼智系に分かれたと主張している。 慶州金氏系の中で、そのような人々が多い。 誰も中国系金氏だと主張しないが、彼らはそれでは誰だろうか? 韓国の少数派の歴史学界には 「 https://youtu.be/i0hghzLO3pE 」 このように歴史財団を作り、韓国クッポンと呼ばれる歴史プロパガンダを作る人がいる。 彼らの主張をよく見ると、新羅は中国大陸にあったという主張だが、古朝鮮は中国大陸にあったという主張だ。  このような主張をするのは誰だろうか。 満州族が中国大陸を侵略した理由、日本帝国がなぜ大陸征服を試みた理由、なぜこのような理由が発生したのか。 韓国の歴代大統領を見て、中国系の氏と曖昧な氏を除けば誰が残るのか。  朴正煕、金大中、金泳三、朴槿惠だけが残る。 ところが金泳三は、「日本の癖を直したい」こんな発言をした準反日派。 ところが、慶州金氏系列だ。おそらくこれの影響を受けたもの。 朴槿惠は女性。 韓国は夫婦別姓が許容される国。 朴槿恵のお母さんは? 陸英修女史。 韓日関係が友好的な時代が朴正煕、金大中時代と一致するのは偶然の一致か。 現代の左派(自由主義者)たちは、中 国系の区別を本当に無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が、現実は全くそうではない。 ここyoutubeのコメントです :

『三國志 魏書卷30辰韓伝』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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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 魏書卷 30 辰韓 伝의 기록에 따르면, "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有城柵。其言語不與馬韓同,名國 為邦,弓為弧,賊為寇,行酒為行觴 " 그러나 위지의 기술은 위나라 사신이 고구려-위 전쟁 직후 서술한 기록이다. 따라서 3세기 후반의 기록이라 생각함이 옳다. 그 당시, 진한의 상황은 어떠했나?  당시 신라의 기록을 보면, 첨해이사금 시대, 왜국과의 전쟁 이후 석우로 장군의 사망이 기록되어있다. 그 이후 신라의 기록은 매우 줄어든다.  이 왜와 전쟁 패배 이후, 위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도착한다. 그럼 신라 사람은 위나라 사신을 어떻게 대접해야 했을까?  내 해석은 다음과 같다 : 진한의 12개국은 전쟁 패배 이후, 신라의 반독립국들이다. 이들은 모두 진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위나라의 도움을 얻기위해, 진한( 辰韓) 이 진한( 秦韓) 을 의미한다고 프로파간다을 한 것.  또, 신라의 “三國志 魏書卷 30 辰韓 伝 :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有城柵。其言語不與馬韓同,名國 為邦,弓為弧,賊為寇,行酒為行觴 ”는 기록은 유리이사금 시대 “三國史記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 儒理 尼師今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기록에 나오는 이민자들의 영향일 것이다. 따라서, 당대 신라인들은 진( 辰) 이 진( 秦) 을 의미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이는 역사적 우연 + 중국주의 프로파간다의 합치물이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 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